[시론] 코로나 시대에 '그린 큐어'를 제안하는 까닭
질병 막을 지속가능한 의학 될 것
평소 잦은 설사로 힘들어하는 한 교수님의 병증을 가려보니 몸이 찬 소음인 이한증(裏寒症)이었다. 생활 속 처방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꿀차를 두 번 드실 것을 권했다. 몇 달 후 만났더니 대변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했다. 이번엔 꿀을 먹고 피부가 붉게 부풀어 오른 언론인을 만났다. 알고 보니 속에 열이 많은 소양인 이열증(裏熱症)이었다. 꿀로 인해 생긴 열독을 씻어낼 녹두죽과 성질이 서늘한 한약 처방을 권했더니 곧 가라앉았다.
두 사람의 몸은 꿀에 대해 정반대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한의학 이론에 기초해 음양·허실·표리·한열 등을 구분하는 행위를 변증(辯證)이라 부른다. 변증은 평소 기(氣)의 분포와 흐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판단하는 한의사의 진단법이다. 그래서 질병 이전에 몸이 점점 나빠져 질병에 가까워지는 상태를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다.
위의 두 사례는 현대 의학으로는 한계가 있는 증상이다. 하지만 방치해 만성이 되면 과민성대장증후군·크론병·악성피부염 등으로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예방적 치료가 중요하다. 무슨 병이든지 척척 낫게 해주는 의사와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어느 의사를 찾을 것인가. 결국 의료에서 더 중요한 것은 치료보다 예방이다.
그러나 예방이 현대 의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2019년 기준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 백신 비중은 3.75%에 불과하다. 정작 사망률이 높은 심장병이나 암 같은 질병들은 백신이 거의 없다. 건강검진도 대부분 질병에 진입한 상태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적군이 어디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전쟁처럼 질병에 대한 예방은 어렵다. 그래서 현대 의학은 질병 진단과 진단 후 치료에 집중해왔다. 그런데 병에 걸린 뒤 치료하는 약물은 대개 강한 작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체 시스템을 분자 단위에서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라 몸 어딘가는 대가, 즉 부작용을 치러야 한다.
한약은 작용 원리가 다르다. 전체적인 기운의 균형을 살펴보고 인류 진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먹어온 자연물을 써서 그 균형을 바로잡는 방식이다. 지속가능한 한약은 음식과 매우 가깝다. 예컨대 꿀은 음식과 차의 재료로 쓰인다. 인삼도 삼계탕에 쓰이고, 기침을 다스리는 길경(桔梗)은 도라지다. 한의학은 질병이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에 따라 약을 쓰기도 하고 음식 조리로 다스리기도 한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다.
우리는 일반 식품부터 차와 술, 건강 기능성 식품, 한약에 이르기까지 예방의학의 치료 수단을 수직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한의학과 과학 역량을 함께 보유한 나라다. 자연물을 이용한 예방적 치료를 ‘그린 큐어(Green Cure)’로 정의한다면, 우리나라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다. 질병 관리에서 전반전에 속하는 예방적 치료는 그린 큐어가 주장을 맡고, 병이 난 뒤의 후반전은 세계 최고인 우리 현대 의학이 주장을 맡으면 어떨까. 코로나19 시대야말로 그린 큐어를 시작할 때가 아닐까.
인체 오감으로 파악하는 한의학 진단은 비대면 전환이 상대적으로 쉽다. 한의사의 눈과 귀와 손가락으로 했던 진단은 상당 부분 센서로 대체할 수 있고 이미 연구·개발돼 있다. 이들 진단기기의 정밀 버전은 병원에 설치하고, 간단한 버전은 생활환경 속에 설치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헬스 기기 로그인 정보들을 주기적으로 모아 분석하면 질병으로 가는 경로를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에서 생애 전주기 건강관리에 활용하면 우리는 자연물과 디지털에 기반을 둔 혁명적인 예방 의학 시대를 맞을 수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지속가능한 의학, 그린 큐어를 제안하는 이유다.
김종열 전 한국한의학연구원장·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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