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조용한 북한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방북이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 북·미 수교가 그다음 차례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워싱턴을 방문한 북한의 2인자 조명록 차수는 대사관 자리까지 알아보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 모든 게 뒤집어졌다. 재검표 소송까지 간 역사적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는 결국 정권 연장에 실패했고, 당선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북 정책을 원점으로 돌렸다. 북한 역시 내놨던 카드를 도로 집어넣었다. 북한이 그때의 경험 때문에 미국과 협상을 할 거라면 무조건 정권 초에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바이든 정권이 출범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도록 아직 북미 간에는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지난 16일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을 맞아 도발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별도의 행사도 없고 미국을 향한 메시지도 없었다. 이처럼 조용한 북한에 대해 미국도 아직은 크게 나서지 않는 모습이다. 4시간 반 동안 진행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 관련 언급은 두세 문장에 그쳤다. “동맹과 함께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정도였다. 국무부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최근 북한과 접촉이 없는 게 “긴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동맹국들과 긴밀한 접촉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과 접촉할 경우 가장 전면에 나서야 할 대북특별대표 자리는 스티브 비건이 물러난 이후 아직까지 공석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여러 이유로 이 직책을 아예 두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북 문제에 정통한 한 워싱턴 인사는 취임 후 100일까지 바이든 정부가 북한 문제에 직접 신경 쓰기는 힘들 거라고 전망했다. 이란이나 중국 문제에 비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백신 배포, 경기 부양, 국민 통합 등 산적한 현안들까지 있다.
문제는 이런 불편한 침묵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는 점이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서로 쓸 수 있는 카드가 현저히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식의 톱다운 결정이 아닌 이상,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더 힘들어진다. 북한도 미국의 ‘정권 초’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무하게 날리고 싶진 않을 것이다. 북한이 조용할 때 대북 정책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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