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사고 취소 위법" 법원, 문 정부 교육 제동

전민희 2021. 2. 1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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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세화고, 행정소송 1심 승소
자사고 폐지와 고교학점제 등
현 정부 핵심 정책에 차질 예상
교총 "정권 이념, 교육 흔들면 안돼"

서울시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취소가 잘못됐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진보 교육정책인 자사고 폐지 방침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와 함께 고교서열화 해소, 고교학점제 등 자사고 폐지와 맞물려 있는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마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은 18일 학교법인 배재학당(배재고)과 일주세화학원(세화고)이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자사고 측은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해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자사고는 5년마다 교육청 평가를 통해 재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7월 평가 대상 자사고 13곳 중 기준점수 70점을 받지 못한 8곳의 지정을 취소했다.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다. 이 학교들은 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지정취소됐지만, 법원이 학교 측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현재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배재고·세화고에 이어 다음 달 23일 숭문고·신일고 1심 선고도 예정돼 있다. 나머지 학교도 변론을 끝내고 선고만 남은 상황이지만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고교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퇴행적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조희연 교육감은 입장문을 통해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할 계획”이라며 “2019년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했고, 행정처분 과정에도 아무런 법률적·행정적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해운대고와의 소송에서 패소한 부산시교육청도 항소를 진행 중이다.

자사고 지정 취소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정부가 2025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일괄전환, 고교학점제 도입 등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교육부가 2025년에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고교학점제는 자사고·외고 폐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자사고 폐지 계속 추진 입장, 일선 학교와 마찰 이어질 듯

김재윤 세화고 교장(왼쪽)과 고진영 배재고 교장이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취소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교육부는 17일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 계획에도 일반고와 특성화고에 대한 계획은 포함했지만 자사고나 외고는 폐지를 기정사실로 보고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가 추진 중인 자사고 폐지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오세목 자사고공동체연합 회장(전 중동고 교장)은 “법원의 결정은 현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며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학부모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 학교 폐지를 주도해서는 안 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현욱 한국교총 정책본부장도 “고교체계는 정권이나 교육감 이념에 따라 좌우돼선 안 되는 만큼 자사고 폐지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며 “교육청은 항소를 할 게 아니라 불공정한 자사고 평가를 진행해 교육현장의 갈등과 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법원 판결과 별도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해운대고가 승소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자사고와 교육청의 행정소송 결과는 교육청의 지정취소 과정에 대한 다툼”이라며 “시행령을 개정해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원래 자사고 일괄 전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당초 유은혜 부총리는 “교육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2019년 6월 24일 기자간담회)고 밝혀 왔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교육부는 ‘조국 사태’ 이후 자녀 입시에서 부적절한 부모 찬스가 논란이 되자 시행령 개정을 통한 일관 전환으로 입장을 바꿨다. 앞서 2019년 6월 전북교육청은 상산고의 평가 기준점수를 갑자기 80점으로 늘려 지정취소를 했으나 교육부의 제동으로 자사고 유지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당시 상산고는 79.61점을 받았다.

2025년 이후 자사고의 운명은 지난해 5월 학교 측이 제기한 헌법소원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외고·국제고 24곳은 교육부가 학교 폐지를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기본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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