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한·일 갈등 우려에도 정의용 "투트랙 원칙"만 반복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일본에 대해선 과거사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미래지향적 협력 분야는 계속 합의를 하자는 투트랙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문재인 정부의 대일(對日)정책 기조가 유화적으로 변한 것 아니냐는 분석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관한 입장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 장관의 답변은 대일 정책에서 과거사 갈등과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해 다룬다는 ‘투트랙 원칙’을 강조한 답변이었지만, 동시에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 앞으로도 일본과 강대강 대치를 이어나가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실제 정 장관은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한 반전의 계기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정진석 의원)는 질의에 “우리의 입장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최근 바이든 행정부 출범 및 북핵 문제 돌파구 마련을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이 필수라는 점을 정부가 잘 알면서도 과거사 문제에서 전향적인 조치를 하기는 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일 원칙이 언제나 투트랙 원칙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중단 결정 뒤 "일본이 수출 통제 이유로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군사정보를 교환하자는 것은 모순"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수출 규제로 응수하며 먼저 정경분리 원칙을 어긴 건 일본이지만, 정부 역시 과거사에서 비롯된 문제를 안보 사안과 연결시키며 투트랙 원칙을 스스로 깼기 때문이다.
이날 전체회의에선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국회 외통위 야당 간사인 김석기 의원은 “일본에 사는 45만명의 재일동포들이 ‘한·일 관계가 최악인 상황은 우리에겐 코로나19보다 무섭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 국민의힘 의원 역시 “일본 정치권에선 한국을 돕지도, 가르치지도, 관여하지도 말자는 ‘비한 3원칙’이 나오고 있다”며 “한·일 간 지금과 같은 불통이 계속되면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정 의원은 “한·일 양국 정부가 대화를 긴밀히 하면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일본 측을 그런 방향으로 설득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정진석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최근 한국 정부의 모습은) 조국 전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 감정을 선동하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된다”며 “쫄지 말고 일본과 싸우자, 이런 식의 반일 선동 정책이 앞으로도 필요하냐”고 했다. 이에 정 장관은 “(반일 선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일본 정부의 고위급 관계자들도 한일 관계에 대해 굉장히 부적절한 발언들을 많이 했던 것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한·일 관계 복원 전략과 관련 “한·일 간 문제는 양국 간에 필요하다면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미국의 중재·개입을 추동력으로 활용해 한·일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발언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 편에서 일본을 설득해주기를 바란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볼 소지도 있는데, 선제적이고 전향적인 대일 조치 없이 미국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한·일 관계를 푸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정 장관은 또 지연되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의 전화 통화에 대해서는 “곧 통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 통화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지난 9일 공식 임기가 시작된 이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시작으로 러시아·아랍에미레이트(UAE)·중국·캐나다 카운터파트들과 통화를 마친 상태다. 하지만 취임 1주일 넘게 일본과는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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