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 월급에서 115만원이.. 불법 '페이백' 기승
[신나리 기자]
▲ 경기도 화성시의 어린이집에서 근무한 보육교사 2명이 원장에게 페이백한 입금 확인증. |
ⓒ 피해자 제공 |
#사례 1. 2020년 3월 2일, 경기도 화성의 A(가정) 어린이집 원장은 박아무개 보육교사에게 단축근무를 지시했다. 코로나로 등원하는 아이들이 줄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월급날, 원장은 박 교사가 단축근무한 시간만큼의 금액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3월부터 9월 박씨가 퇴사하기 전까지 6개월에 걸쳐 원장에게 320여만 원을 입금했다. 많은 달에는 한 달에 115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사례 2. 경기도 용인의 B(민간) 어린이집에서 일한 이아무개 보육교사도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200여만 원을 원장에게 반납했다. 이 원장 역시 코로나 핑계를 댔다. 월급날마다 이씨에게 반납액을 알린 원장은 돈을 현금으로 인출해 달라고 했다.
코로나 1년, 어린이집 원장이 보육 교사에게 지급한 월급을 일부 돌려받는 이른바 '페이백'이 지속되고 있다. 원장들은 코로나 확산으로 어린이집 휴원령이 내려졌던 시기(2020년 2~6월)부터 휴원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보육교사에게 꾸준히 페이백을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가정 어린이집의 페이백 요구는 암암리에 이뤄져 이전에도 문제 제기된 바 있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의 페이백 요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이하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의 지난해 4월 보육교사 페이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280명 중 12.9%가 2~3월 페이백을 경험했다. 또 25.4%가 원장으로부터 페이백을 권유받거나 동료 교사가 권유받는 것을 목격했다. 같은 해 12월 직장갑질 119가 보육교사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집 10곳 중 4곳꼴로 원장이 페이백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승은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은 1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로 등원 아이들이 줄고, 지자체의 현장 지도 점검 역시 줄어들었다"라면서 "원장들이 이런 환경을 악용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부터 코로나 상황의 '긴급보육' 시기에 등원아동 수가 줄더라도 어린이집 보육료 등 예산을 100%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어린이집에 보육교사가 단축근무를 하더라도 임금은 정상 지급하라는 공문을 수 차례 내렸지만, 일부 원장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원장들이 지속적으로 페이백을 요구하는 건 그로 인해 어린이집 운영정지 등의 처분을 받더라도 과징금으로 대체하는 등 운영에 큰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 경기도 용인시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보육교사에게 페이백 금액을 요구했다. 이 원장은 현금으로 페이백을 받았다. |
ⓒ 피해자 제공 |
페이백을 요구한 어린이집 원장들의 '계산법'은 각기 달랐다. 경기도 화성의 A 어린이집 원장은 먼저 어린이집에서 지급하는 170여만 원의 월급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보육교사에게 직접 지원하는 보육교사 지원비(40여만 원)를 더한 총 210여만 원에서 9시간을 나누어 박씨의 시간당 임금을 계산했다. 8시간 기본근무에 1시간의 휴게시간을 더한 것이다.
반면, 경기도 용인의 B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의 일당을 먼저 계산했다. 이 원장은 170여만 원의 보육교사 월급을 출근일(20일)로 나눠 일당을 8만 원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일당과 출근하지 않은 날의 횟수를 곱해 페이백 금액을 산출했다. 원장은 지자체의 지도점검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페이백을 현금으로 받아 갔다.
B 어린이집에서 일한 이아무개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페이백 후 결국 월급을 60만 원 받은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참다못한 그는 지난해 9월, 어린이집 원장의 페이백 요구를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신고했다. 그러자 원장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다른 보육교사들은 원장과 원래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었어요. 페이백 신고로 어린이집이 점검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원장은 저를 의심했죠. 교사들을 모아놓고 저 들으라는 식으로 '페이백을 신고한 사람은 아이를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책임감이 없는 보육교사'라면서 '어디가서든 보육교사 하지마라'고 협박조로 말하더라고요."
화성 A 어린이집의 페이백을 신고한 박아무개씨 역시 원장의 폭언에 시달렸다. 그는 "원장이 술취한 채로 전화해 '돈 많은 X이 돈 욕심낸다'라면서 '너 같은 X은 없어져야 한다'라고 욕했다"고 토로했다.
▲ 1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어린이집 '코로나 페이백' 1년, 사례발표 및 엄벌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페이백 등 어린이집 운영에 비리 적발 시 원장 자격정지와 어린이집 운영 중단 처분 등을 받는다. 하지만 시행령 '과징금 산정기준'(제25조 4)에 따른 운영정지 1일당 과징금 액수 기준표가 있어 운영정지 처분은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실제로 용인의 B 어린이집은 지난해 10월 말 지자체로부터 '원장 자격정지 3개월'과 '어린이집 운영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원장은 운영정지 3개월을 과징금으로 대체했다. 그러면서 임시 원장을 내세워 어린이집 운영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기존 원장은 어린이집 학부모들에게 '건강상의 문제로 3개월 자리를 비운다'라고 안내문을 보내 학부모들은 원장의 '페이백 요구사건'을 모르고 지나갔다.
화성의 A 어린이집은 시설 폐쇄와 원장 자격정지 1년 행정처분을 받았다. 시설 폐쇄는 운영정지보다 센 처분으로 과징금 대체가 불가하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페이백이 교사들의 동의하에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은 부장은 "A 어린이집은 페이백뿐만 아니라 부정 회계처리, 정부지원보육료 부정 취득 등 다른 비리가 적발돼 센 처분을 받은 것"이라면서 "보통은 (페이백만으로) 원장 자격정지와 어린이집 운영정지도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회계 개선 명령이 전부"라고 말했다.
오 부장은 "어린이집 원장들의 페이백 요구는 당연한 관행이 아니다. 정부 보조금을 마음대로 활용한 것이고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페이백은 운영정지나 원장 자격정지 처분로 끝날 것이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그래야 원장들 사이에 페이백으로 징역까지 살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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