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2시간 근무 후 과로사..쿠팡,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쿠팡은 과로사 방지책을 내놔라."
18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 쿠팡 대구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고(故) 장모(27)씨의 부모가 찬 바람 속에서 '쿠팡의 과로사 재발 방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쿠팡 대구 물류센터에서 지난해 10월 야간근무를 한 후 자택에서 숨진 장씨는 지난 9일 근로복지공단에서 과로사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장씨의 부모는 이날 "아들이 죽은 후 쿠팡은 근태기록 제출에 비협조적이었고 과로사도 줄곧 부인했다"며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의 근무 환경을 개선시켜 놓는게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쿠팡은 최근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하면서 국내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 켠에선 현장 근로자의 사고 재해가 잇따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5월 쿠팡 인천물류센터에서 숨진 계약직 송모씨, 올해 1월 동탄물류센터에서 숨진 계약직 최모씨 등은 장씨처럼 쿠팡과 산재 사망 여부를 다투고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쿠팡의 사고재해(사망포함) 현황에 따르면 2017년 47건, 2018년 137건, 2019년 164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이 사고재해로 판정한 건수로, 직원들의 신청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쿠팡맨’으로 불리는 택배기사의 경우 직고용, 주 52시간 도입 등 근로조건을 개선해왔다. 하지만 택배업계 관계자들은 "쿠팡 본사는 몰라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물류센터 일용직 직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장씨의 어머니도 "비정규직 신분이면 회사에 업무상 질병 책임을 따져 묻기도 어렵고, 우리 아들처럼 사망해도 유족이 과로사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의 사망을 두고도 쿠팡은 “주 52시간 법정근로시간을 지켰다”며 과로사를 부인했다. 하지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장씨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보면 쿠팡의 주장과 달리 물류센터의 과중한 업무가 확인된다. 공단은 야간근무(오후 10시~익일 6시)의 경우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할 때 장씨는 사망 전 1주간 업무시간이 62시간10분, 사망 전 2주~12주간 평균 업무시간은 58시간18분이라고 봤다. 또 하루에 3.95~5.5㎏의 박스나 포장 부자재를 80~100회가량 옮기는 등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에 노출됐다고 적시했다.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며, 근육이 급성으로 파괴되어 근육과다 사용이 주요 원인이라는 의학적 소견”이라고도 덧붙였다.
쿠팡은 이처럼 공단이 산재 판정을 내린 이후에야 입장문을 내고 “고인에게 애도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장씨 사건을 맡은 김세종 노무사는 “쿠팡의 그간 태도를 볼 때 산재 판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낼 줄 알았는데 사과 입장문을 내서 내심 놀랐다”며 “이틀 뒤 미 증시 상장 추진 발표가 나왔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난 15일 배송직원을 비롯해 물류센터 직원 등에게 1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무상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엔 상시직 전환을 조건으로 장씨같은 물류센터 일용직 3000명도 해당된다. 내달 5일 주식을 받은 날로부터 1년 근무시 50%를, 2년 근무하면 나머지 50%를 받는 방식이다. 쿠팡은 “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성장 과실을 나누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물류 현장에선 "과중한 업무를 2년 견뎌야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은 배송직원에 대해 노동법적 보호 노력을 해온 건 맞지만 초단기 고용이 이뤄지는 물류센터에서 산재와 과로 노동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미 증시에 상장시 부응해야 할 책임도 생기는 만큼 지속가능한 고용모델을 위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도 “쿠팡이 현장 근로자들의 과중한 업무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성장한 만큼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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