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허락 없이 남의 집 리모델링"..대전시 향나무 톱질에 '황당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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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 단계부터 충남도와 협의 안 해”
옛 충남도청사에 있던 향나무 128그루를 무단 제거한 대전시가 ‘소통협력공간’사업 공모 단계부터 소유권이 있는 충남도 등과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대전시 안팎에선 “남의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주인 허락도 없이 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한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시는 “2019년 2월 10일 소통협력공간 조성 사업을 행정안전부에 신청, 한 달 뒤에 승인을 받았다”고 18일 밝혔다. 이어 대전시는 같은 해 4월에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2개월 뒤에 충남도에 공모사업 선정에 따른 리모델링 승인을 요청했다. 이때도 향나무 절단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충남도는 “도청사 소유권이 문체부로 넘어가니 문체부와 협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충남도청사 소유권은 현재 충남도에 있으며, 오는 7월 문화체육관광부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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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손해배상 청구 방침"
이와 관련, 충남도 관계자는 “공모사업 신청 전에 대전시가 아무런 업무협조를 해오지 않았다”며 “공공 기관이 이런 식으로 무단 행정을 집행하는 것은 보기 힘든 경우”라고 말했다. 충남도는 지난 15일 공사중지와 원상복구를 요청하는 공문을 대전시에 보냈다. 아울러 충남도는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 중이다.
조경업계에서는 베어진 향나무의 가격이 5억~6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전지역 한 조경업자는 "수령 50년 넘은 나무값은 그루당 200~300만원 할 것"이라며 "그루당 식재비 50만원까지 합하면 총 배상액은 4억5500만원~6억3700만원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대전시가 베어낸 향나무 가운데 상당수는 1930년대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심은 것이다. 수령은 80~90년이다. 옛 충남도청 건물은 2002년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베어낸 향나무가 문화재는 아니지만, 도청 건물 경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전시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 문체부와도 제대로 협의하지 않았다. 대전시 측은 “지난해 11월 문체부에 설계도와 계획서를 전달하는 등 4차례 구두 협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문 등을 통해 사업 계획 관련 협의가 끝난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대전시는 지난해 6월부터 향나무 172그루 가운데 128그루는 폐기했다. 나머지 44그루는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 대전시 관계자는 “나무 경제성 등을 고려해 폐기할 나무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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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충남도 등의 승인 없이 사업을 추진한 것과 관련해서는 “옛 충남도청사 공간은 시민에게 관심이 많고 시민 정서가 많이 스며든 곳”이라며 “행정 마인드로 접근하지 못했고, 행정에 관해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충남도가 원상복구 요청을 해와서 검토한 결과 다른 나무나 잔디를 심는 방안 등을 충남도와 협의해서 원만하게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전시는 사업추진 과정을 감사해 실무진에 잘못이 있을 경우 문책할 방침이다.
향나무 무단 절단 등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이다. 국민의힘 대전시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대전시민이 대전에 남겨진 역사적 유산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무엇을 들여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있느냐”며 “대전시의 역사의식 부재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전시가 조성하려는 소통협력공간사업은 옛 충남도청사 부속건물인 의회동과 무기고동, 선관위동, 우체국동 등을 리모델링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는 사회적자본지원센터·사회혁신센터가 입주하고, 공유주방·카페·갤러리도 설치할 계획이다.
사업비는 총 123억5000만원이다. 시설비가 63억5000만원이고, 나머지 60억원이 프로그램 운영비다. 대전시는 “소통협력공간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해 지역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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