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학교는 '예열 중'입니다

정혜영 2021. 2. 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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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급, 새 학생들과 의미 있는 만남을 준비하다

[정혜영 기자]

2월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초중고 학생이 없는 가정에서는 2월 학교의 모습이 어떨지 잘 모를 것이다. 현재 대학생 정도라면 2월의 학교 모습이 남아 있으려나? 학생이 있다고 해도 학교에 가지 않는 2월의 학교 모습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2월의 학교 모습은 현재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1, 2학기로 학기가 구분되고 그 사이를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이 크게 구분 지어 준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과거 2월에는 '봄방학'으로 더 많이 알고 있는, '단기 학기말 방학'이 있었다.

그땐 겨울방학을 12월 크리스마스 전후에 했고, 여름 방학보다는 10일 정도 긴 방학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2월에 2주 정도 마무리 수업을 하는 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에는 학교 급별 학습 진도가 마무리되고 종업식과 졸업식 행사를 치렀다.

12월 말경이면 중고등학교에서는 거의 학과 진도가 마무리되기 마련인데, 과거 2월에는 학교에 나오다 보니 학사 일정이 흐지부지되기 쉽고, 학생들 또한 뚜렷한 목적 없이 몸만 왔다 갔다 하는 학교생활을 하게 되기 십상이었다. 특히 진학을 위한 마지막 평가를 마친 중3이나 고3 학생들에게 이 기간은 형식적인 시간 때우기 학사 일정에 불과했을 것이다.

2월 단기 학기말 방학이 사라졌다

현재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2월 단기 학기말 방학이 사라졌다. 굳건하기만 하던 학기말 방학을 없애자고 최초 발제한 이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처음에는 철옹성보다 더 견고한 장벽과 마주했을 것이다. 지금은 학생들과 함께하는 2월 학사 운영이 없어진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이와 같은 변화를 시도하던 초창기에는 반발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2월 학사 일정을 없애려면 12월까지 거의 모든 학사 일정을 끝마쳐야 했다. 그 말은 가뜩이나 짧은 2학기에 치러야 할 행사(체험학습, 각종 공개수업, 학부모 상담, 운동회나 학예회, 평가, 졸업식 등)을 정신없이 해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2월에 있던 2주 정도의 수업 시수를 맞추려면 12월도 모자라 1월의 1/3가량까지 수업을 해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어차피 2월에 할 일을 12월 말과 1월 초에 걸쳐 당겨 하는 일이니 '조삼모사'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정서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나만 해도 교사 경력 10년이 넘을 동안 1월에 아이들과 학교에서 수업한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학교의 주 구성원인 학생과 교사들이 없는 과거 1월의 학교는 가뜩이나 찬바람 나는 계절에 휑한 느낌이 한층 더해지기 마련이었다. 1월의 학교는 시베리아 북풍 한가운데 있는 외딴 산골처럼 스산하고 냉랭한 무원고립의 공간이었다. 그런 1월에 학교에서 수업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 이슈가 된 일의 파장은 퍼져 나가는데도 가속도가 붙는지, 이내 학교마다 2월 학사 운영을 하지 않는 학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중고등학교부터 시작되긴 했으나 한 집안 형제간의 학사 일정이 다르면 가정과 학교, 교육청, 모든 교육 공동체에 일대 혼란이 오기 때문에 어차피 2월 학사 일정을 없애는 수순을 밟아가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래도 누워서 떡을 먹으면 목에 걸릴 수 있으므로 앉아서 천천히 곱씹어 먹어야 탈이 없는 법이다. 2~3년에 걸쳐 조금씩 조정을 거듭하다 결국 2월 학사 일정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았다.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한 시기 보내는 교사들

그렇다면 과거 학교의 1월 모습이 현재의 2월로 옮겨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학생들과의 모든 학사 일정은 1월 10일을 전후로 모두 끝나고 겨울 방학에 들어가며, 2월엔 학생들은 없지만, 교사들은 학교에서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2월 초는 교사들의 관내, 관외 전출입이 완료되는 시점으로, 이 시기에 학교에서는 학년과 업무 배정이 이루어진다. 몇몇 학교들은 겨울 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정하기도 하지만, 교사들의 이동이 완료되는 시점이 2월인지라 2월 이전의 새 학기 배정은 확정적이라 할 수 없다.

오늘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년과 학급 배정이 완료되었다. 겨울 방학 전에 동학년 교사들끼리 고심하며 우리 학년 학생들의 분반을 하고 다음 학년으로 올려보냈는데, 우리 학년 역시 분반되어 온 학생들의 명단을 가지고 반을 정하게 된다. 가, 나, 다 순으로 임의 분반된 학생들 명단이 든 봉투를 제비뽑기하여 새 학년, 나의 반이 될 아이들을 뽑는다. 여러 개의 봉투 중 하나를 뽑으면서 모든 교사의 마음은 한 가지였을 것이다.

'1년 동안 무탈하게 보낼 수 있는 반을 뽑게 해 주소서.'

우리 학년이었던 아이들을 반 배정하면서 얼마나 고르게 섞으려고 노력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소망(所望)은 한낱 소망(小望)에 불과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여러 반 모두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교사들은 없다. 그럼에도 그 순간, 나와 합이 맞는 아이들을 만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우, 떨린다~!"

하면서 봉투를 하나씩 뽑고 설레는 마음으로 명단을 열어 대부분 알 리 없는 명단 속 학생들의 이름을 쭉 훑어본다. 이름만 보면 아이들의 면면을 다 알기라도 할 것처럼.

몇 명의 강아무개, 김아무개, 박아무개, 정아무개 등 그렇게 새로운 30명의 아이와 미리 만난다. 종이 위에 쓰인 이름으로 미리 만난 아이들은 아무리 '관심법'으로 꿰뚫어 본다 해도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 이 아이들과 3월부터 어떤 그림을 그려가느냐에 따라서 한 명, 한 명의 이름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새로 배정된 학급으로 교실의 물건을 옮기고, 새 학년, 새 학기 교육과정을 짜며, 교실 환경 정리까지 마무리될 즈음이면, 의미 없던 종이 위의 이름들이 각자의 다른 표정을 가지고 학교를,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2월의 학교는 3월의 아이들과 만남을 위해 '외부로는 티가 나지 않는' 부산함으로 채워진다.

새로운 만남을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가며 아이들과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다.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올해는 코로나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과 좀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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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brunch.co.kr/@gruzam47)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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