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격노했던 평양병원, 잔디까지 깔고도 문 못여는 까닭
밤낮 없이 공사, 공정 전하던 北 최근 침묵
"대북 제재로 첨단 의료기기 반입 못한 듯"
한때 중국산·중고기기 반입 검토 소문도
북한이 지난해 당 창건 75주년(10월 10일)을 맞아 야심 차게 추진했던 평양종합병원 건설이 목표시한을 4개월여 넘겼지만 아직 문을 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종합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세를 보인 지난해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의료체계 현대화 차원에서 직접 지시해 건설을 시작했다. 동평양지역에 가로 약 550m, 세로 120m 부지에 건설하는 대형 병원으로, 김 위원장의 야심작으로 꼽힌다. 김 위원장은 착공식(지난해 3월 17일)에 직접 참석해 첫 삽을 뜨고, “올해 계획됐던 많은 건설사업 뒤로 미루고, 올해(2020) 진행되는 대상 건설 중에서도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할 건설”이라며 “당 창건 기념일 이전에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병원 건설장을 찾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 인민을 위한 영광스럽고 보람찬 건설 투쟁을 발기한 당의 숭고한 구상과 의도가 왜곡 되고 당의 영상(이미지)에 흙탕칠을 하게 될 수 있다”고 질책했다. 김 위원장은 “(병원 건설 공사를)마구잡이식으로 경제조직사업 진행하고 있다. 지원사업을 장려함으로써 인민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들씌우고 있다“며 담당 간부들을 전격 경질하기도 했다. 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다른 공사를 취소한 채 ‘올인’했던 병원 건설 과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해를 넘긴 18일 현재 북한은 병원 준공을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당국자는 “평양종합병원은 김 위원장이 애민 사상을 과시하려는 차원으로 야심 차게 추진했던 사업”이라며 “건설 초기 북한 매체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공사 진척 소식을 전했지만, 준공식 소식은 물론 최근엔 아예 공사와 관련한 언급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은 건설 초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건물공사를 했다”며 “지난해 10월 초쯤 병원 건물 공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병원이 가동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병원 건물 공사는 사실상 마무리 됐지만, 병원 운영을 위한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본지가 지난해 11월 9일 촬영된 구글어스 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은 이 병원의 외관의 칠까지 마쳤고, 병원 앞뒤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는 등 조경공사도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병원 근처에 공사를 위해 동원했던 장비와 차량도 모두 철수한 상태다.
그런데도 북한이 준공식과 정상적인 병원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의료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병원에서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의료기기들은 대부분 대북제재에 묶여 북한이 반입할 수 없는 품목”이라며 “북한이 침대 등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CT(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장치)와 같은 핵심 의료기기들은 수입이 불가피한데, 이들 장비들의 반입이 여의치 않자 완공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선 북한이 의료기기 반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간급 간부들의 전용 병원인 남산병원에 설치한 장비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얘기가 돈다. 또 북한이 중국산 제품을 밀수 형태로 반입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각각 신축 병원에 중고기기를 설치하는 것에 문제가 있고, 김 위원장이 중국산 설비 반입을 반대했다는 소문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북ㆍ중 교역이 크게 감소하면서 의료 기기의 반입 역시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통위에서 “북ㆍ중, 북ㆍ러 간에 인적ㆍ물적 교류가 크게 감소했고, 북한은 방역과 경제 등 대내 현안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통일부는 지난해 북·중 교역이 5억 4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약 81%가량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북한의 국경 봉쇄로 김 위원장의 '국정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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