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에 업무만 1000개인데, 이 일이 쉽다고요?

신희주 2021. 2. 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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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상담사 파업 릴레이 기고 ⑦]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발걸음

[신희주 기자]

 
 1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건보 고객센터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과 직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11곳의 조합원은 이날부터 동시에 파업에 돌입했다. 공단은 민간위탁 방식으로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고객센터 근로자는 공단 협력업체 직원이다.
ⓒ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고객 응대 여성 서비스 노동에 대한 연구들을 할 때의 경험이 생각났다. '파업을 시작한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왔으며, 그로 인한 불합리한 대우를 얼마나 오랫동안 참아왔을까?'라는 점에 생각이 닿았다. 돌봄, 청소, 판매 등 그들의 노동과 닮아 있는 많은 저평가된 여성 노동들도 함께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콜센터' 업무를 특별한 기술 없이 수행할 수 있으며, 간단한 교육을 통해 고객의 질문에 정해진 대로 대답하는 저숙련 단순 업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남성 종사자들도 늘어나긴 했지만 "여성이라면 이 직업이 더 적합하고 쉽다. 원래 여성들은 상냥하고 친절하고 공감능력이 남성들보다 좋으니까"라는 과거의 인식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고객과 직접 대면하거나 전화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업무는 그렇게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고객과의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것은 복잡성과 난이도가 높아 반드시 숙련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고객응대 서비스 노동자들은 전문 지식을 활용해 다종다양한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최선의 서비스를 창출하는 의사소통의 숙련 노동자다. 같은 정보를 요구해도 고객마다 성별, 나이, 직업, 성격에 따라 다르게 선호되는 정보 전달의 방식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응대 전략을 세우고 접근해야 성공적인 업무가 가능한 과정인 것이다.

실제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경험하는 고객의 요구는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사업장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걸려오는 문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인바운드 상담사는 고객들의 문의 내용을 미리 알 수 없다. 또 예외 상황이 늘 발생하므로 상담사들의 업무는 단순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무엇보다 상담사들이 소속된 업체나 고객 상담 업무를 위탁한 업체의 업무 전반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상담 매뉴얼은 업무에 대한 일반적 가이드라인이고, 각 상담 단계에서 해야 하는 "죄송하지만~", "아, 그러셨어요"와 같은 바람직한 호응어 등의 형식을 제시하는 수준이며, 고객의 특성과 그들의 문의 내용에 따라 매뉴얼은 다르게 적용된다.

게다가 상담사는 여러 개의 전산 화면과 창을 띄워놓고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확인하며 고객 상담을 수행한다.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고객들도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 상담사는 전산상에 나타나는 고객의 정보를 파악하거나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문의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여 응대해야 할 때도 있다.

최소 수개월이 지나야 어느 정도 숙련된 상담이 가능한 고객센터에서 숙련 상담원에게도 생소한 문의가 많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가 더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면서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범위 역시 확장되었다.

누구나 콜센터에 취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업무가 단순 노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채용 이후 고강도의 업무와 상담 능력의 부족 등으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한 상담원들의 퇴사율이 매우 높아 부족한 인력을 상시 메꿔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공서비스에서 저숙련, 저임금 여성 노동은 왜 가능할까?
  
 고객센터의 상담은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실제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에 머물러 있다. 또 업무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량, 열악한 노동환경, 고용 불안까지 감내해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 SXC
  
이렇게 고객센터의 상담은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실제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에 머물러 있다. 또 업무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량, 열악한 노동환경, 고용 불안까지 감내해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을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에 의해 이루어지던 가정 내의 많은 일이 가정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었고, 과거에는 가정 안에서 여성의 무급 노동으로 해결되었던 돌봄이나 가사와 같은 일들이 '직업'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적 특성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직업들에 성 역할 고정 관념이 투영되었고, 이러한 일자리들은 여성이라면 특별한 기술을 갖지 않아도 누구나 가능한 저숙련, 저임금의 노동으로 인식되었다.

고객센터의 노동이 단순 업무로 간주되는 것 역시 상담사들에게 요구되는 의사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 친절함 등이 여성적 특성이며 이 특성들은 여성이라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훈련되고 교육되어야 하는 그들의 전문성이 간과되면서 그들의 업무가 평가 절하된 결과이다.
  
이번 파업에 돌입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매일 평균 120여 건, 연간 총 3500만 건의 상담 민원을 처리해왔다. 이들의 상담 업무는 건강보험 가입, 보험료 부과 및 조정, 보험징수, 보험급여, 건강검진 사후 관리, 4대 사회보험 징수통합 및 민원 등 1000개가 훌쩍 넘는다.
  
건강보험 관련 일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고 복잡하며 통합적이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누구나 한 번쯤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에 문의 전화를 해본 경험이 있을 테지만,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종류와 성격이 이 정도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하루 업무일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상담원들의 업무가 단순히 제공된 책자의 정보를 암기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종류의 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건강보험 관련 상담 업무는 국민 모두의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다루는 대국민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가장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간접고용으로 모든 책임 상담사에게 고스란히

그러나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위·수탁 구조는 이들 상담원의 삶을 옥죄고 있다. 11개 위탁 업체 간 경쟁 구조 때문에 상담원들은 콜 수에 의해 업무가 수량적으로 평가되고, 한 콜당 정해진 시간 때문에 제대로 된 상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한 고객의 불만은 고스란히 상담원들의 책임이 된다.

국민의 건강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그들의 개인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공단이 아닌 민간의 인력 관리업체에 위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들의 업무가 얼마나 저평가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경력이 오래되어도 최저임금 수준에 고정된 임금, 상담 후 처리를 제대로 할 시간도 없이 대기 상태로 돌입하는 근무환경, 실적을 위한 전자 감시와 노동 통제, 인격 모독과 성차별 등 이 모든 것은 간접고용 노동자이기에 경험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일 수밖에 없다.

또한 간접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불필요한 서비스 수행 압박과 수량화된 평가 기준 때문에, 직접 고용된 지사의 정규직 직원들과 같은 민원 업무를 수행해도 그들보다 몇 배 이상의 대화를 해야 하는 신체적 소진을 경험한다. 결과적으로 극심한 직무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로 이들 상담사의 90%가 건강상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상시적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직접고용은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약속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사용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직접 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고객센터 상담원들의 교섭 요구도 회피하고 있다.

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공단에 의한 직접고용과 임금을 비롯한 처우 개선은 정당하며 당장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투쟁은 저평가되는 우리 사회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더 나아가 모든 여성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기획 / 건강보험공단 상담사 파업 릴레이 기고]
① 건강보험공단 직원과 통화하기 어려운 이유, 이겁니다 http://omn.kr/1rxd7
② 끝없는 외주화... 누가 나의 의료정보에 손대나 http://omn.kr/1rx9h
③ 하루 120콜, 3분 이상 '빨리 끊어'... 우수콜센터 건보공단의 실상 http://omn.kr/1rym1
④ '최우수기관상 수상' 건보공단, 이분들도 챙겨야 합니다 http://omn.kr/1rz5m
⑤ '국민 건강 책임'지는 건보공단의 '건강하지 못한' 상담사들 http://omn.kr/1s0or
⑥ 건보공단이 콜센터 상담사 '직접 고용'해야 하는 이유 http://omn.kr/1s3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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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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