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북한산] 주변만 맴돌아도 볼거리는 많다

이지형 헬스조선 취재본부장 2021. 2. 1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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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북한산 문수봉에서 바라본 서울의 전경./사진=이지형 헬스조선 취재본부장

맴돌기만 했다. 주변을 배회할 뿐, 중심으로 진입하지 않았다, 못했다. 왜 마이너리티를 자처하는지 물은 이도 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만 살았다. 넘보지 않을 세상을, 일찍이 밀쳐두었다. 거기까지만, 그때까지만…. 넘보지 않을 것을 넘보지 않았다. 내 세상이 아닌 걸 알았으므로, 그 세상 아니어도 살아갈 곳 있었으므로.

산행도 사람을 닮아가나. 여러 해 북한산을 오르면서도, 북한산성 안으로 선뜻 발 들여놓지 않았다. 우회하고, 배회하고, 관망했다. 꾸준히 다가가기는 했다. 누구에게든, 어디로든 다가가는 건 세상에서 가장 수줍은 일, 행복한 일이니까.

◇태양도 잠든 시간, 향로봉을 향하는 즐거움

겨울, 새벽이면 길음역 3번 출구를 나와 7211번 녹색 버스를 탄다. 북악터널을 지나 평창동, 구기동을 휘감아 돌아 불광동 가기 직전의 구기터널 앞에서 내린다. 이르면 오전 7시, 해뜨기 전이다. 그러나 흐릿하게 날은 밝아온다. 일출 전의 시민 박명―. 부지런한 도시인(시민)들을 비춰주는 한 가닥 엷은 빛(박명)이다. 오늘의 태양은 지평선과 수평선 밑에서 아직 숨 고르는 중이면서도 본색을 숨기지 못한다. 아스라한 빛을 지상에 뿜어낸다.

그 어둔 빛을 뚫고 고요한 주말의 북한산으로 다가간다, 다가간다. 24시간 편의점 옆 예찬김밥에서 김밥 한 줄을 사고, 주택가에 청명하게 똬리 튼 영광교회를 지나 짧은 계곡을 오른다. 탕춘대능선으로 통하는 길이다. 향로봉을 향하는 암반의 가파른 능선. 그러나 향로봉은 쉽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60~70도 각도로 솟아오른 험로를 조금 비껴, 비봉으로 통하는 우회로를 택한다. 그렇게 해발 535미터, 향로봉 옆 산마루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기다란 비봉능선이 펼쳐진다.

천천히 능선을 밟으며 비봉을, 사모바위를, 승가봉을 지나면 문수봉이 절경의 절벽으로 우뚝 솟는다. 그렇게 북한산성을 향해 다가간다, 다가간다.

◇때론 북한산성 안으로 진입하고 싶지만…

북한산은 자신의 거대한 몸을 동북에서 남서로, 경기도와 서울을 관통하며 길게 펼친다. 북한산성은 그 중간쯤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형성된 타원형의 산성이다. 군데군데 돌들을 쌓아 올렸으되, 인력이 없었어도 타원의 윤곽 이미 뚜렷한 천혜의 요새다. 북한산의 정중앙에 육중한 검(劍)으로 솟은 백운대를 중심으로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타원을 이루며 양 방향으로 내부의 분지를 껴안으며 펼쳐져 내려간다. 서서히 고도를 낮춰가다 북한산의 서쪽 지평에서 합류한다. 비봉능선을 거쳐 도착한 문수봉도 그렇게 산성을 이루는 봉우리 중 하나다.

문수봉을 넘어 잠깐 걸으면 대남문이 나타난다. 문(門)은 산성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통로다. 왼쪽 계곡으로 방향을 틀면, 북한산성 내부로 진입한다. 300년 전 조선의 왕이 유사시에 피신하려 했던 행궁의 터를 중심으로, 자연과 역사의 기억이 어지러이 얽혀 있는 곳이다. 대남문에서 잠깐 고민한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산성 내부로 진입할 것인가. 그렇게 북한산성의 속살을 들여다볼 것인가. 중심으로 진입할 것인가.

◇경계에서 보는 서울, 한강, 불꽃 봉우리들

오래된 습관처럼, 북한산성을 에두르기로 한다. 대성문을 지나고, 보국문을 스쳐 대동문으로 향한다. 진입 대신 관망을 택한다. 산성 안팎을 가르는 돌담들을 따라 경계를 배회한다. 대동문에서 다시 경계를 이탈해 성곽 밖으로 나간다. 진달래능선, 길고 좁은 길을 따라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하루의 산행을 마친다. 4시간 쯤, 통산 10여 킬로미터의 간소한 산행.

언젠가는 경계를 뚫고 북한산성 내부로 진입할 것이다. 하지만 경계 위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따로 있다. 탕춘대능선, 비봉능선, 북한산성 주능선을 느린 걸음으로 주파하며 멀리서 뱀처럼 유영하는 한강을 보고, 서울의 전모를 조감한다. 불꽃처럼 명멸하는 북한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을 감상한다. 그렇게 주변부를 방황하고 배회하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다른 세상을 넘보지 않아도, 절경은 넘쳐난다. 다가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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