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낳은 역차별]"디지털 주권 빼앗길라" 글로벌 공룡 韓 플랫폼 장악 더 심해졌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차민영 기자]"내 일상 대부분이 구글로 덮여 있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겨우 1시간 장애였는데."
퇴근 후 유튜브 시청을 즐기는 30대 직장인 김준영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구글의 서비스 장애로 약 1시간 동안 일상이 마비되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겪었다. 지메일·일정·클라우드 등은 물론 집 안 내 주요 시스템도 구글홈과 연동해 생활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플랫폼에서 발생한 오류로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을지는 몰랐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사업자와의 ‘규제 역차별’에 발목 잡힌 사이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ICT공룡들의 국내 플랫폼 장악은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더욱 거세졌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구글의 서비스 장애는 ‘비대면(언택트) 시대’에 더 확고해진 글로벌 플랫폼 공룡의 위세를 가늠케 하는 대표적 사례다. 내로라하는 ICT 강국인 한국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플랫폼을 장악당하고 자칫 디지털 식민지, 콘텐츠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잇따른다.
◆韓 플랫폼 점령 가속화
18일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따르면 작년 1월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확인된 이후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글로벌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은 더 높아졌다. 국내 온라인동영상 유통시장에서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페이스북 3개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7.2%로 전년 대비 23.6%포인트 상승했다. 업체별로도 1~3위가 모두 해외 플랫폼이다. 반면 4위 네이버TV와 5위 아프리카TV의 점유율은 4.8%, 2.6%로 뒷걸음질쳤다.
'코로나발 집콕' 수혜를 입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들 사이에서도 넷플릭스 1강 구도가 굳혀졌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넷플릭스의 한국 결제금액은 5173억원으로 전년 대비 108% 늘었다. 유료 가입자 역시 410만명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12월 닐슨코리안클릭 기준 월간 순 이용자(MAU)는 넷플릭스가 816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내 OTT인 웨이브는 370만명, 티빙은 279만명, 왓챠는 150만명을 기록했다.
국내 인터넷 검색엔진시장에서 구글은 40%대를 돌파했고, 애플리케이션 마켓시장에서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90%에 육박한다. 공공 앱의 경우 98%가 구글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규모 자금력과 규모를 앞세운 글로벌 플랫폼의 공습은 코로나19발 언택트 전환을 계기로 더욱 거세지는 모습이다. "이대로라면 5년, 10년 뒤엔 해외 서비스들이 국내 시장을 전부 차지하고 이용자만 남게 될 것"이라던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의 몇해전 발언이 우려대로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교수는 "이렇게까지 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규제에 있다"며 "더 이상 플랫폼 경쟁은 국경의 의미가 없음에도 국내 플랫폼 기업에만 낡은 규제, 갈라파고스적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단순한 역차별이 아닌 강력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국 플랫폼 활성화해야"
업계 안팎에서는 디지털 식민지화, 디지털 콘텐츠 수익의 해외 유출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내 플랫폼에 대한 정책적 육성, 국내 생태계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로 촉발된 ‘앱 통행세’ 논란은 시장 지배적 위치의 플랫폼기업이 단순히 정책을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산업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극회가 나서서 정부에 '글로벌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 것'을 주문한 이유가 여기있다. 곽규태 순천향대 교수는 "구글이 수수료율을 과도하게 올렸을 때 국내시장에서 대항할 플랫폼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시장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산업 수익의 해외 유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실태조사 결과 구글은 인앱결제 강제로 국내에서만 1568억원의 이득을 더 챙길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은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객관적으로 피해가 확인됐다"며 "국회는 앱개발자들과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구글 갑질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토종 플랫폼을 정책적으로 육성해 시장 경쟁을 회복시키는 한편 스크린 쿼터제, 콘텐츠 동등접근권처럼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일정 의무를 부여한 법적 장치까지 한시적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규모 투자 자금, 글로벌 인프라를 바탕으로 킹덤 등 K콘텐츠를 해외로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넷플릭스에 대해서도 '넷플릭스 종속' 'K콘텐츠 제작 하청기지 전락' 우려가 쏟아진다. 소위 말하듯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콘텐츠 제작부터 유통까지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며 정작 국내 사업자, 제작자의 협상력은 약화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콘텐츠 하청기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플랫폼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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