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美 탄소국경세, 한국기업 선제적 대응 필요"
"지금은 미·중 신냉전..어느 한쪽에 서라고 강요하기 어려워"
[대담=최일권 아시아경제 경제부장, 정리=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미국의 탄소국경세 부과안이 이르면 내년 구체화될 전망이다. 미국시장에서 제품을 팔려면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단 뜻이다. 시장 진입비용 상승에 따른 기업들의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기업의 가장 큰 부담으로 '환경'을 꼽으며 이 같이 강조했다.
김 전 본부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서명한 행정명령 중 통상과 직접 관련된 건 '바이 아메리칸'과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2건"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면서 환경을 통상에 포섭하기 위한 룰을 만드는 단계에 있다"고 이 같이 강조했다.
탄소배출 감축, 선택 아닌 필수…파리기후변화협약 의무 이행이 대응 출발점
탄소국경세는 유럽연합(EU)이 역내의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는 새로운 관세 형태다. EU는 탄소배출 감축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역내 수출기업에는 지원금으로 보전하고 역외 수입기업에는 부담금을 추가로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통상전략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바이든 대통령도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나 기업 제품에 추가 관세를 물릴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다자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보호무역 기조는 지속되고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가 주요 아젠다로 등장할 것이란 관측이다. 탄소국경세는 아젠다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전망이다.
그는 "미국 시장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서만 제품을 팔 게 아니라면 결국 탄소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면서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된 내용의 충실한 이행이 미국의 탄소국경세 부과에 대한 우리 대응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약 합의 이상을 요구할 경우 우리도 거부할 명분이 있고, 일방적으로 관세를 때리려는 시도도 피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탄소국경세가 국내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를 유도할 가능성에 대해 김 전 본부장은 "미국 밖에서 제품을 생산해 안으로 들어갈 때 관세 등이 문제라면 기업들은 미국 땅에서 제품을 만들 것"이라며 "미국이 국외 생산 기업의 환경규제 준수비용을 인정해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미국 수출에 따른 물류비 등을 감안해 기업들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 조달시 미국산 구매를 우선하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과 관련해선 미국이 기존에 체결된 협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을 걸로 봤다. 세계무역기구(WTO),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양허한 내용을 지키면서 미국산 구매를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對中정책, 바이든도 트럼프와 차이 없을 것…韓美동맹 강화로 中압박 막아야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미·중 갈등관계는 여전히 전세계 통상질서의 핵심변수를 유지할 전망이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에 대해 "'트럼프 정책은 안된다(all but Trump)'가 아닌 '중국 빼고 트럼프 정책은 안된다(all but Trump but China)'"라고 언급할 정도로 중국에 대해선 트럼프 행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전 본부장은 "트럼프가 쓴 관세 수단은 그대로 두면서 동맹 강화, 인권, 노동, 환경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등 아젠다의 스펙트럼을 훨씬 넓게 가져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 뿐 아니라 국무부, 정보기관을 총동원할 것이란 관측이다. 또 입법·행정·사법기능이 모두 형해화된 WTO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의 개도국 위치에 따른 특별대우, 국영기업, 보조금 등을 문제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결국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냐는 질문에 김 전 본부장은 "과거 냉전 때는 줄서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신(新)냉전"이라며 "이 시대에서 '경제'란 그레이존(중간지대)에 있고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답했다. 경제에서 진영싸움을 적용하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이유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고 중국은 바로 옆에 위치한 만큼 동맹인 미국 편에 무조건 설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김 전 본부장은 "유럽연합(EU)도 중국과 투자협정을 맺었다"면서 "미국도 경제문제에 대해 선택하라고 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본부장은 다만 몇 년 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떠올리며 중국의 압박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한미동맹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치동맹으로 꽉 쥐고 있어야 할 한미동맹을 흔들면 중국과 게임이 안된다"고 언급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취임 후 첫 정상간 통화에서 한국을 '인도·태평양' 대신 '동북아 린치핀'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우리가 동심원의 외곽에 있다는 의미"라며 "우리 스스로 자리매김에 민감했다면 달리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에 대비해 우리도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며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그는 "미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의 간판, 구성원을 바꾸고 기후변화 등 주요 아젠다를 포섭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체제를 만들어 돌아올 것"이라며 "일본의 자동차 비관세 장벽 등 일본과의 대차대조표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대담=최일권 경제부장
정리=권해영 기자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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