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캐러밴 여행, 이제 시작합니다
[이강진 기자]
▲ 캠핑장에 있는 수영장. 캠핑장 시설이 좋다. |
ⓒ 이강진 |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호주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바이러스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해외로 나갈 수 있는 하늘 길이 열릴 가능성은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일까, 호주에서는 국내 여행이 붐이다. 바닷가 우리 동네만 해도 휴가철만 되면 숙소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민박(Airbnb)을 운영하는 이웃의 말에 의하면, 평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캐러밴을 끌고 여행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오랫동안 혼자 집을 지키며 지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해외여행은 힘들다. 캐러밴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호주 대륙을 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오래전 호주를 한 바퀴 돌았을 때의 생각이 떠오른다.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다. 지난 세월의 경험은 아름답게 남는 것일까, 그 당시 여행에서 겪은 좋은 생각만 새록새록 떠오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캐러밴을 사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는 동행이 없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다. 따라서 견인하기 쉬운 작은 캐러밴을 고르기로 했다.
▲ 고급 캐러밴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한두 사람 지내기에는 불편함이 없는 나만의 캐러밴에 만족한다. |
ⓒ 이강진 |
생각을 바꾸어 중고 캐러밴을 사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한다. 내가 원하는 캐러밴을 판다는 광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찾아갈 수 있는 가까운 동네에서는 광고가 나오지 않는다. 매일 열심히 찾는다.
드디어두어 시간 떨어진 동네에서 내가 원하는 캐러밴 광고가 나왔다. 거의 새것이다. 서둘러 찾아가 캐러밴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할아버지 인상이 좋아 대충 흥정했다. 조금 비싸게 산 기분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다정함이 보상하고도 남는다.
며칠 후 난생처음 캐러밴을 견인하여 집에 왔다. 먼저 가까이 지내는 동갑내기 켄(Ken)을 불렀다. 큼지막한 캐러밴을 가지고 호주 전역을 돌아다니는 이웃이다. 집을 팔고 캐러밴으로 여행이나 하면서노후를 지내자는 아내와 가끔 말다툼한다고 한다. 여행이 좋아도 집은 있어야 한다고 켄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켄이 능숙한 솜씨로 캐러밴을 둘러본다. 바퀴 아래까지 누워서 들여다본다. 내부도 꼼꼼히 살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냉장고 사용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캠핑장에서 지낼 때 챙겨야 할 것에 대해서도 설명이 장황하다.
캐러밴을 견인해 동네를 돌면서 전기 브레이크의 작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준다. 내가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몇 번 다니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는 말라고 한다. 자기 일처럼 꼼꼼히 챙겨주는이웃이다. 고맙다.
본격적으로 호주 여행을 떠나기 전에 캐러밴 생활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외진 곳보다는 여행객이 많은큰 도시가 좋을 것 같다. 캐러밴 점검도 하고 캠핑에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구입하기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골드 코스트(Gold Coast)로 정했다.
골드 코스트 해변에 있는 캠핑장을 예약했다. 떠날 준비를 한다.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은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것이라 쉽게 챙긴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마를 비롯해 부엌 용품도 챙겨야 한다. 간장, 기름 등 조미료까지 혼자서 챙기려니 정신이 없다. 이부자리도 가지고 가야 한다. 나름대로 꼼꼼히 챙겼다. 그러나 캠핑장에 가면 잊고 온 물건이 있을 것이다.
떠나는 날이다. 이웃이 조언한 대로 캐러밴을 견인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 다시 점검한다. 전기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동네를 벗어나기 전에 확인한다. 드디어 평소에 자주 다니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운전한다. 자동차가 추월한다. 평소에 캐러밴 견인하는 자동차를 항상 추월하며 운전했던 나 자신이 생각난다.
▲ 캠핑장에 늘어선 캐러밴, 호주 사람 중에는 캐러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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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다름없는 고급 캐러밴도 많이 보인다. 위성 안테나까지 구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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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캐러밴을 끌고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부부다. 사륜 구동차에는 요트와 도로에 빠졌을 때를 대비한 장비도 갖추고 있다.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호주 전역을 다니는 여행객임에 틀림없다. 예전 호주 여행 중 오지에서 자주 보았던 전형적인 히피 모습이기 때문이다. 농촌 일손을 도와주면서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한다. 그리고 호주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저녁 시간이다. 캐러밴 작은 공간에서 고기를 굽는다. 김치도 넣어 볶는다. 가지고 온 밥도 함께 섞는다. 계란도 넣는다. 김치볶음밥 비슷한 요리가 끝났다. 음식을 식탁에 올린다. 먹을 만하다. 가지고 온 포도주도 한잔한다. 캐러밴에서 처음으로 요리해 먹는 나만의 식사 시간이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지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러밴에서 첫날을 편안하게 지내고 아침을 맞는다. 생각보다 침대도 편하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 바다가 내륙 깊이 들어와 있는 해변을 산책한다. 사상가들은 걸으면서도 호흡과 걸음에 정신을 집중하며 명상한다고 한다. 나 같은 범인으로서는 흉내 낼 수 없다. 낯선 풍경과 하나가 되어 걷는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혼자 걸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자신의 미래를 훤히 안다는 것은 고통이라고 한다. 불안한 미래야말로 사람을 싱싱하게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시도하라는 옛 성인의 말씀도 생각난다.
▲ 캠핑장 해변에서 하루를 즐기는 사람들.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가족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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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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