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허리띠 졸라매기 '한계'..말라가는 가계 여윳돈

조현숙 2021. 2. 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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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이모(43)씨는 가족끼리만 모여 제사를 지냈다. 정부의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로 친척 손님은 한 명도 오지 않아 제사 음식은 최소한으로 했다. 그런데도 나간 돈은 손님 여럿을 치를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씨는 “과일이고 생선이고 지난 설ㆍ추석보다 가격이 배 가까이는 오른 느낌이었는데, 역시나 제사상에 딱 올릴 만큼만 음식을 했는데도 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요즘도 장 보러 마트에 가면 값이 너무 올라서 가격표를 볼 때마다 놀란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시민들이 설 제수 용품을 구입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계는 한껏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치솟는 물가 탓이다. 바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늘어가는 스트레스에 술ㆍ담배 소비는 크게 늘었다.

18일 통계청이 발간한 ‘가계동향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290만7000원을 썼다(소비 지출). 1년 전과 비교해 0.1% 줄었다. 지난해 3분기(-1.4%)와 견줘 지출 감소세가 둔화하긴 했지만,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 보긴 힘들다. 물가 영향이 커서다.

소비 품목별로는 식료품ㆍ비주류 음료 지출이 전년 동기 대비 16.9%로 크게 증가했다. 육류와 채소 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식료품 가운데 육류(30.5%), 신선수산동물(28.7%), 채소 및 채소가공품(20.5%) 등 지출이 유독 많이 늘었다.

주거ㆍ수도ㆍ광열비 지출도 전년 대비 5.5% 늘었다. 부동산 값이 상승하며 월세 등 주거비 부담이 커져서다. 집콕족, 재택 근무가 늘면서 주택 유지ㆍ수선비 지출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코로나19로 영양 보조제, 마스크 등 구매가 늘면서 보건 지출(8.5%)도 여전히 증가하는 추세다.

주류ㆍ담배 소비(12.5%)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중이다. 주류 소비는 1년 전보다 22.2%, 담배 지출은 5.8%로 증가했다. 지난해 2분기(9.5%), 3분기(10.7%)에 이어 3분기 연속 늘었을 뿐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상승 폭까지 커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코로나 블루’로 대표되는 스트레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여가 활동의 한계 등이 주된 이유다.

반면 코로나19로 바깥 외출이 줄면서 의류ㆍ신발(-9.2%), 음식ㆍ숙박(-11.3%), 오락ㆍ문화(-18.7%) 지출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 여가 시간이 늘었지만 술ㆍ담배 등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소비가 늘고 있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부동산 가격 상승, 증시 활황 등 영향으로 세대별, 소득계층별 소비 양극화가 앞으로 더 뚜렷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계 여윳돈은 점점 말라가는 중이다. 빠듯한 소득에 정부 지원금도 한계가 있고, 물가 탓에 소비 지출을 마냥 줄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소득-비소비 지출)은 417만5000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2.3% 늘긴 했지만 3분기(426만1000원)와 비교해선 2.0% 줄었다. 번 돈에서 쓰고 남은 돈(흑자액, 처분가능소득-소비 지출)은 126만9000원으로 1년 전 대비 8.2% 늘었지만 역시 3분기(131만6000원)만은 못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저소득층에 더 가혹했다. 지난해 4분기 가계 살림에서 적자를 본 건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뿐이다. 한 달 평균 24만4000원 적자를 봤다. 돈 나갈 곳은 많은데 벌이가 그에 못미쳐서다. 1년 전보다 적자액이 줄긴 했지만 1025원(-0.4%) 소폭에 그쳤다.

나머지 소득 2~5분위 가구는 모두 흑자를 봤다. 특히 소득 상위 20%(5분위)는 돈을 다 쓰고도 월평균 338만3000원을 남겼다(흑자액). 전년 동기 대비 6.1%나 증가했다.

한편 이날 열린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참석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취약계층의 고용ㆍ소득 어려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두 분기 연속 분배가 악화된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엔 이호승 경제수석,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류근관 통계청장,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참여했다.

이들은 “기존의 피해계층 지원을 조속히 집행 완료하고, 이들을 더 두텁고 넓게 지원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며 “직접 일자리 조기 집행 등을 통해 올해 1분기 중 중앙정부ㆍ지자체 ‘90만+α’ 직접 일자리를 신속히 제공하고 일자리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 지원과 민간 일자리 상황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한층 강화하겠다”고 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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