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당해도 말 못해요", 가로막힌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들
[추혜인]
'요양보호사'라고 하면 중장년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만큼 전체 요양보호사의 85% 이상이 50대 이상의 여성들이다. 고령자 노동에 대하여, 특히 요양보호사들이 방문요양을 통해 제공하는 1대1의 고립된 노동과 성폭력의 위험에 대해서는 지난 <일터>에서도 여러 차례 조망한 적이 있다.
2020년 말인 11월,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에서는 '서울시 장기요양 현장 성희롱 피해 근절 대책 마련 토론회'를 열었다. 요양보호사 2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2.4%가 업무 중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을 했다. 서울시 전체 요양보호사 중 무작위로 뽑은 표본이 아닐 것이므로, 사실 전국 44만 명 요양보호사에게 이 비율을 일괄적으로 적용할 순 없다.
다만, 위 설문조사 결과 중 필자가 주목하는 숫자는 성희롱/성폭력 유경험자 중에서 이것이 단 1회로 끝났다고 보고한 사람이 28.3%에 그쳤고, 6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도 17.0%에 이른다는 응답이었다. 또한 기관운영자에게 보고하거나 조치를 요구하는 경우는 17.3%에 불과했다는 응답이었다.
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성희롱/성폭력을 겪어도 그 즉시 제지하지 못하는지, 6개월째 그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또는 관리자에게 제대로 보고하고 시정을 요구하지 못하는지. 우린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가로막힌 성폭력 피해의 목소리들
요양보호사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지가 저하된 노인에 밀착해서 돌보는 일을 한다. 요양서비스의 대부분이 재가 요양(가정에 방문하여 요양서비스를 제공) 형태이다 보니, 집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이 1대1로 마주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성희롱/성폭력이 보다 쉽게 벌어질 수 있으며, 증인과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
또한 고령 여성들이 담당하는 노동은 저임금일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노동으로 인정되기 힘들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돌봄이 전문적인 노동이 아닌 허드렛일처럼,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이는 자연히 요양보호사의 처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구성원의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돌보는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담당함에도, 제대로 된 노동조건을 보장받기는커녕 온갖 비인격적인 대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여성 노동자들의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는 요양보호사의 의견을 쉬이 묵살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조장한다.
요양보호사의 안전을 지켜줄 장치가 없다
방문요양을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는 하루에 몇 시간씩 일주일에 몇 번, 2~3명 이용자의 집을 방문하여 요양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노동한다. 그러다 보니 근무시간이 유동적이라는 특성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도 이에 따라 들쑥날쑥하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에게 압박이 되기도 한다.
요양보호사도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즉 직장 내 성희롱 규정들을 적용받게 된다. 대부분의 성희롱/성폭력이 이용자 노인에 의해 자행된다는 점으로 볼 때,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 대하여 사용자의 조치 의무를 규정한' 남녀고용평등법을 원칙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장 성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그 노인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다음 노인 이용자와 매칭이 될 때까지 요양보호사는 사실상 수입이 없다. 가해자에 대한 아무런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오히려 요양보호사의 임금만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은 요양기관이 요양보호사를 전일제로 고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가를 책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요양보호사가 이용자 노인의 가정을 방문하여 집안에 부착된 코드를 찍은 그 순간부터 다시 그 코드를 찍고 나올 때까지의 시간만큼만 수가로 인정한다. 그것도 최저임금을 줄 정도의 수가만으로. 그러니 성희롱/성폭력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에 명시된 유급휴가를 신청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 요양보호사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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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예방을 위한 3가지 방향
반성폭력 운동은 크게 3갈래로 나뉜다고 한다. 첫째는 성폭력특별법을 만들고 해바라기(성폭력/가정폭력ONESTOP지원)센터를 만드는 것과 같은 법제도를 만드는 운동이다. 둘째는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지하고 지원하는 운동이다. 셋째는 피해자가 더이상 약한 피해자의 위치에 고립되지 있지 않을 수 있도록, 자기방어를 통해 좀 더 강건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생존을 도모하는 운동이다. 물론 이 운동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순환되는 운동이다.
요양보호사의 성희롱/성폭력 위험과 관련해서도 다음과 같이 상상해보면 어떨까. 성희롱 등 가해를 한 이용자의 가정은 당연하고, 요양서비스가 제공되는 모든 일터에 2인 1조 혹은 이용인과 동성(性)인 요양보호사를 투입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여러 요양기관이나 요양보호사로부터 동일한 문제를 지적받은 가해 이용자에 대해서는 장기요양 수급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 인지기능의 저하가 있는 노인들은 별도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기에, 이용자의 유형과 상황에 따라 보호 조치를 다양하게 취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이용자나 이용자의 가족이 경각심을 가지고, 장기요양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돌봄 현장에서의 성폭력/성희롱이 발생하였을 경우, 즉시 사건 현장에서 요양보호사가 벗어날 수 있도록 분리조치를 취해야 한다. 요양보호사에게 유급휴가를 보장해주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과 필요한 경우 심리지원이 동반되어야 한다. 나아가 현장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독립된 기구가 필요하다.
개별 요양기관들의 경우, 이용자와 고객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제대로 조사를 하고 예방조치를 명확히 취하기 어렵다. 이용자들의 민원을 피하고 이용자 수를 유지하거나 늘려서 평가가 낮아지는 걸 막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잘 대처한 요양기관에는 대해서는 특별한 지원을 하는 등의 지원대책도 고려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돌보는 이들이 돌봄에 대한 적절한 권한을 가지는 것이다. 달리 말해, 요양보호사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법제도적으로 이들의 권리가 표명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돌봄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돌봄의 사회적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 돌봄노동이 필수적이고 전문적인 노동으로 자리매김할수록, 요양보호사 직종에 대한 사회적인 존중감과 요양보호사들 스스로의 사명감이 커질 수 있다.
이에 더해,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돌보는 이들을 위한 자원활동가 교육 안에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을 넣었다. '집안'이라는 밀폐된 공간, '돌봄'이라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대단히 밀착된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자기방어와 거리 유지가 가능해야, 돌보는 이들도 자기 자신을, 나아가 어르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 스스로도 성폭력/성희롱을 경험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에휴, 노인이라 어쩔 수 없다, 몸이 불편하니 내가 이해해야지', '치매인데 어쩌겠어'라는 것이라 한다. 일면 그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어쩌면 오랫동안 반복적인 폭력에 노출된 이들의 체화된 무기력을 닮아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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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추혜인 가정의학과 전문의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2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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