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 보험료가 그렇게 아까웠나

김형남 2021. 2. 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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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의 갑을, 병정] 직무 연관성 입증해야 보장하는 '병사 단체 실손보험'

[김형남 기자]

 
 군 장병 휴가 통제가 해제된 15일 서울역 내 여행 장병 안내소(TMO)에서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열차 승차권을 발급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2021.2.15
ⓒ 연합뉴스
 
[기사수정: 18일 오후 10시 57분]

'병사 단체 실손보험 가입 사업' 예산이 2021년 국방 예산에 처음으로 편성되었다. 본격적으로 도입 논의를 시작한 것이 2018년부터이니 3년 만이다. 편성 예산은 약 153억 원이다.

현역병은 군 병원에서 무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군 병원의 진료 능력을 초과하는 환자 역시 국가가 진료비를 전액 부담하여 민간 병원에 위탁 진료를 보낸다.

그런데 군 병원의 진료 능력과는 무관하게 민간병원에서 진료받기를 희망하는 경우 진료비는 전액 병사가 자비로 지불해야 한다. 원래 국민건강보험법상 현역병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부담금 몫까지 병사가 오롯이 자기 돈으로 지불해왔다. 그러다 2004년부터 병역 의무 이행을 이유로 건강보험 혜택에서 배제되는 것이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수용되어 공단 부담금 몫은 국방부가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 부담금은 여전히 병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병사 단체 실손 보험은 이러한 부담을 줄이려고 고안된 제도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병사들이 민간병원을 이용할 때에도 진료비 걱정 없이 의료 혜택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병사들을 실손 보험에 가입시키고 보험료는 국가 예산으로 부담하는 방식이다. '군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병사 실손 보험 관련 가입·해지·정산 업무는 군인공제회가 위탁받아 운영할 예정이다.

민간병원 이용하는 병사들 늘어

이러한 병사 단체 실손 보험이 도입된 데는 병사들의 민간병원 이용률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국방부가 지출한 현역병 건강보험부담금은 2017년 640억 원, 2018년 758억 원, 2019년 803억 원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민간병원을 이용하는 병사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병사들의 민간병원 이용률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험연구원이 2019년 실시한 '병사 의료기관 이용 행태 현황 및 인식조사'에 따르면 병사들이 민간병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의료수준이 뛰어나서(19.3%), 군 의료서비스 만족도가 낮아서(17.9%), 의료시설이 좋아서(11.6%) 등으로 나타났다. 군 병원에 대한 병사들의 불만족이 민간병원 이용 증가의 주된 요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병사들이 군 병원에 불신의 눈길을 보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료사고, 불친절, 장시간의 예약대기, 접수대기, 열악한 시설 등 이유도 다양하다.

한편, 병사들이 군 병원을 이용하는 이유로는 비용이 들지 않아서(26.1%)가 많이 꼽혔다. 군의관 및 간부의 권유(14.7%), 간단한 행정절차(11.1%) 등이 뒤를 이었다. 종합하자면 군 병원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는데, 민간병원 진료비용은 부담된다는 것이 병사들의 일반적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병사들이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는 데 개개인의 경제력 차이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군 병원 진료가 무료인 것은 징집되어 의무 복무를 하는 병사들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다. 경제력,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군 복무를 하는 동안은 누구나 공평하게 의료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군 의료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니 결국 돈 있는 사람은 자기 돈 내고 민간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가고, 진료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군 병원을 이용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두 가지다. 군 병원의 수준을 민간병원 수준으로 향상시키거나, 민간병원 진료비를 국가가 지원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군 병원의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징집한 병사, 국가의 책임은 무한대

군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논할 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전문 의료 인력의 부족이다. 전체 군의관 중 전문의 취득 후 5년이 지난 숙련의는 2~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전공의로 군복무 중인 단기 군의관이다. 낮은 급여와 근무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군 병원의 수준을 점차 향상시키면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병사들의 민간병원 진료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병사 단체 실손 보험이 고안된 것이다.

그런데 당초 정부가 민간병원 이용 지원을 목적으로 제도를 도입한다고 홍보했던 것과는 달리 보험 혜택 적용대상이 협소해질 것으로 예상되어 우려스럽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군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보험을 통한 치료비 지원의 대상을 복무기간 동안 교육훈련 또는 업무수행 등으로 질병에 걸리거나 상해를 입은 경우로 제한했다. 시행령을 예산 편성의 근거로 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에 따라 임오경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광명갑)이 대표 발의하여 지난해 12월 개정된 '병역법' 역시 치료비 지원 대상을 동일하게 명시해두었다.

다시 말해 아픈 사람이 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질병과 직무의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위법 소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병사 실손 보험 제도가 고안된 배경과 취지를 퇴색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공무상 질병을 얻은 군인의 진료비는 군 병원, 민간병원을 막론하고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 복무 중 병에 걸렸거나 다친 병사를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의료지원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도의 근거가 될 법령에는 공상 장병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군의료서비스 미비에 따른 민간 의료시설 진료비 지원 책임이 모호하게 섞여 있다.

게다가 예산상 보험료 역시 국가 부담은 80%고, 20%는 병사 개인이 부담하게끔 책정되어 있다. 원래 국방부가 보험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라 제출한 사업 예산 총액은 209억이었다. 외래진료비 25만원을 보장하고, 보험료는 100% 국가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예산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이를 135억으로 깎았다. 이 과정에서 병사들의 '과잉 진료'가 우려된다며 국가가 보험료의 80%만 지원하고, 20%는 병사에게 부담을 지우기로 한 것이다.

국회의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최종 예산이 153억으로 결정되긴 하였으나,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병사 부담분 20%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교육훈련, 업무수행 등으로 보험 혜택의 범위를 좁혀놓고, 보험료마저 국가가 다 부담하지 않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책정된 예산 153억 원에서 56억 원만 더 지출하면 보험료를 100% 국가가 다 부담할 수 있다. 2021년 국방예산은 52조 8401억 원이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집에 가지 못하고 24시간 영내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는 병사들이 일과시간에 다치면 직무와 연관이 있고, '개인정비시간'에 다치면 직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의무복무로 징집한 병사에 대해 국가의 책임은 무한대다. 건강권 보장 역시 국가가 무한히 책임져야 할 일 중 하나다.

군 의료서비스로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다면 당연히 민간 의료시설 이용을 지원해주어야 한다. 국가가 제대로 된 처우를 제공하지 못해 병사 개개인이 자기 돈으로 각자도생해야 하는 군대는 병든 군대다.

제도를 설계하고 정치를 이끄는 이들이 말로만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고, 국군 장병들이 소중하다고 할 일이 아니다. 남성들이 군 복무로 피해를 본다고 선동만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국방의 의무가 갖는 가치를 높이는 일은 병사들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 병사 실손 보험의 보장 범위를 군 복무 중 발생한 질병, 증상 등으로 전면 확대하고 보험료 역시 군이 100% 부담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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