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돕다 손가락 잘린 피해자 "회사가 일부러 넣은 것 아니냐 묻더라"
[김종훈, 이희훈 기자]
▲ 산재노동자 악조노벨 산재피해자 류승희씨는 산업재해로 손가락 세개가 부분 절단 되었다. |
ⓒ 이희훈 |
네덜란드 글로벌 기업인 악조노벨분체도료(아래 악조노벨)에 다니는 류승희(40)씨는 지난 2018년 10월 산업재해를 당했다. 동료의 지원 요청으로 기계에 걸린 제품(칩 형태 도료)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넣었다가 장갑이 롤러와 고정판에 말려 들어가 변을 당한 것이다.
기계가 정상작동 중이었다면 상단 덮개가 열렸을 때 자동으로 작동이 멈춰야 하지만, 오작동으로 기계가 계속 돌았다. 이 사고로 류씨는 왼손 검지 두 마디를 포함해 엄지와 중지 반 마디씩 손가락 3개가 절단됐다.
사고 후 류씨는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아 이듬해인 2019년 3월까지 요양했다. 그러나 수차례 수술을 거치며 신체는 어느 정도 회복했으나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된 정신적 고통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류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인정받아 2020년 1월까지 재요양에 들어갔다.
그런데 2020년 2월 회사로 복귀한 류씨는 복귀 한 달여 만인 3월께, 회사로부터 '2020년 4월 1일부로 해고 처분을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안전수칙 위반'. 동료의 요청으로 작업을 돕다 손가락 3개를 잃은 류씨를 악조노벨은 내부 수칙 위반을 이유로 해고한 것이다.
류씨를 포함해 동료들과 함께 부당해고 구제를 위해 경기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문을 두드려서 다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노동위원회는 "비위행위(안전수칙 위반)가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류씨의 손을 들어줬다. 류씨는 2020년 7월 현장에 다시 복직했다.
그러나 류씨를 향한 악조노벨의 징계는 멈추지 않았다. 현장에 복직한 류씨에게 회사는 2020년 10월께 다시 한번 '정직 3개월' 징계처분을 내린다. 이유는 해고 사유와 같은 '안전수칙 위반'. 류씨의 소명에도, 악조노벨은 2021년 1월부터 2월까지 류씨에게 정직 2개월의 처분을 강행했다.
눈발이 흩날린 16일 점심 무렵 <오마이뉴스>는 서울 정동 네덜란드 대사관 앞에서 류씨를 만났다. 류씨는 "징계가 타당하지 않다고 회사에 공문도 보내고 1인 시위도 수차례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면서 "남은 선택지가 네덜란드 대사관 앞에 서서 부당행위를 알리는 것뿐이라 이 자리에 섰다"라고 1인 시위 이유를 밝혔다. 류씨는 지난 1월 6일부터 동료들과 돌아가며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류씨가 소속된 악조노벨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으로 페인트와 코팅, 특수화학 등의 사업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는 세계적 수준의 기업이다. 악조노벨은 분체도료(가루 형태의 도료) 사업을 전담하는 한국법인을 지난 1985년에 설립했다. 공장은 경기도 안산시 화학단지에 자리해 있다.
▲ 산재노동자 악조노벨 산재피해자 류승희씨 |
ⓒ 이희훈 |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류씨는 이날 오전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정동까지 올라와 "네덜란드 기업 악조노벨은 산업재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자 정직 2개월 중징계로 끝까지 괴롭히고 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류씨는 "손가락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라고 고백했다.
"사고 후 손가락 모형의 실리콘을 근 1년 넘게 끼고 다녔어요. 처음에는 나이 든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말하지도 못했고요. 그런데 뒤늦게 사실을 안 부모님이 '네가 먼저 이겨내야 다른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네가 숨길수록 다른 사람도 심각해진다'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이후엔 사실을 인정하려고 더 노력을 했고요."
하지만 잘린 손가락을 내 몸으로 자각하기까지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회사의 대응이 류씨를 아프게 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음에도 복직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어렵게 복직했더니 다음 날 하루 교육받고 퇴근하는데 '보직변경' 명령을 내리더라고요. 타이를 이용해 비닐포장을 해야 하는, 손가락을 자유롭게 써야 하는 파트로요. 그 순간 '회사 그만두라'는 뜻으로 생각되더라요."
그럼에도 류씨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자신의 시린 손가락을 보며 버텼다. 그러나 회사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들의 발언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회사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간부 중 한 명이 제게 말하더라고요. '일부러 손을 (기계에) 넣은 거 아니냐'라고. '의심이 돼 CCTV로 여러 차례 돌려봤다'면서.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당신 같으면 이렇게 손가락 잘리고 싶겠냐'고. '나는 죽어도 손가락이 잘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라고 답했어요. 어느 미친 사람이 자기 손을 넣어 절단하고 싶겠어요."
이날 눈발이 흩날리는 와중에도 피켓을 잡고 선 류씨는 <오마이뉴스>를 향해 "내가 바라는 건 결코 큰 게 아니"라면서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했으면 좋겠다. 저같이 해고당했다가 복직되고, 다시 징계받는 이런 사례가 없어야 하지 않나. 회사가 부당징계를 철회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류씨의 1인 시위는 징계가 예정된 이달 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 산재노동자 악조노벨 산재피해자 류승희씨 |
ⓒ 이희훈 |
<오마이뉴스>는 류승희씨 부당해고 및 정직 징계와 관련해 악조노벨 사측의 반론을 듣기 위해 16일과 17일 양일에 걸쳐 십수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회사와 인사관계자 모두 전화와 문자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17일 오후 4시께 연결된 통화에서 악조노벨 고위 관계자는 "공식질의는 인사담당자에게 메일 등을 통해 해달라"면서 "논의를 거쳐 답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류씨에 관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서를 보면, 사측은 "기계 작업을 하기 전 전원을 차단하고 작업해야 하는 내부규정(LSR로 지칭)을 위반해 징계사유를 삼았다"라고 명시했다. 회사가 류씨에게 발급한 징계통보서에는 "작업 수행 중 상해사고가 발생해 LSR(Life Saving Rules)을 위반했다"면서 "단체협약, 취업규칙, 상벌규정에 근거해 2020년 4월 1일자로 징계해고한다"라고 적시됐다.
악조노벨은 류씨의 재해 이후 사고가 난 기계 덮개에 이중화 센서를 설치하고 경고문구를 부착하는 후속 조치를 취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