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 눈물의 호소..'ICJ 카드' 묘수일까 악수일까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단 받게 해달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3) 할머니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제안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Internationa Court of Justice)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해 판가름하자는 이 할머니의 주장에 일각에선 "왜 그 동안 ICJ 제소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었나"라는 궁금증이 제기된다. 30년이 넘는 위안부 문제 공방에서 국제연합(UN)의 사법기관인 ICJ를 활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이다. 이 할머니의 제안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묘수인지, 악수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ICJ 제소 주장이 생소한 건 그동안 논의 자체를 조심스러워 했던 이유가 크다. 박근혜 정부 때인 6년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이를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효성을 두고 내부 의견이 엇갈리면서 추진되지 않았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계자는 17일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의 한일합의 직후, 정대협에서는 ICJ 회부 요청 논의가 진행됐었다"며 "다만 내부에서 실효성 등에 대해 의견이 나뉘어 실제 요청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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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 등으로 확산 가능성"
한국과 일본 등 UN 회원국은 ICJ의 판결에 따를 의무가 있다. ICJ 판결은 최종적이며 상소할 수 없다. 안건이 회부되면 국적이 다른 15명의 재판관이 비공식으로 이를 심의한 후 판결한다. ICJ에 위안부 문제가 회부되려면 한국과 일본 정부 양측이 응해야 가능하다.
정의연 측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만으로 국제 법정에 갈 확률이 낮다고 본다. 그만큼 ICJ 제소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의연 관계자는 "우려되는 것은 위안부 문제가 실마리가 돼 다른 문제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며 "독도 문제와 식민통치의 불·합법성 등까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ICJ 제소는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한 맥락과 장단점을 함의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54년과 62년에 이어 2012년에도 독도 문제의 ICJ 공동제소를 제안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우리 땅 독도는 분쟁 지역이 아니다"라며 이를 거절했다.
"'위안부 제도=범죄', 국제사회 상식"
이용수 할머니의 제안을 기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추진위원회(추진위)'가 결성됐다. 이 할머니가 위원장을 맡았고,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CARE,구 가주한미포럼 KAFC)’의 김현정 대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대구)시민모임’의 서혁수 대표, 그리고 국제법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 온 연세대 법학연구원의 신희석 박사 등이 추진위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연구자이자 정의연의 신임 이사인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중론’을 폈다. "추진위의 주장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면서다.
김 교수는 "위안부 제도가 당시의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라는 사실은 1990년대 이래 수많은 유엔 인권기구들에 의해 확인됐고, 2000년 법정에서도 선언돼 국제사회의 상식이 돼 있다"며 "그 사실을 추가로 확인받기 위해 수년이 걸리고 엄청난 비용이 드는 ICJ 제소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ICJ 제소가 한국에 실익이 있느냐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ICJ에 가져가면 국내외 외교력 집중이 필요할 뿐 아니라 '부르는 게 값'인 ICJ 전문 국제 로펌을 확보하는 등 비용적 부담이 크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국은 ICJ 제소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도 약점이다. 일본은 ICJ에서 패소 2회, 승소 1회를 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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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승소 가능성은 작고, '국제법 위반' 리스크
ICJ 판결을 통해 위안부 제도가 당시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라는 사실을 확인받더라도 다른 리스크가 있다. '절차적으로 개인 배상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포기됐고, 한국 법원은 일본의 주권면제를 존중해야 한다'는 식의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김 교수는 "ICJ에 제소해 전면 승소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추진위의) 신희석 박사도 '한국과 일본의 주장을 일부씩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며 전면 승소의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판단이야말로 일본 정부가 ICJ를 통해 얻어내려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국제법 위반' 주장이 국제법에 부합한다고 선언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대법원 판결, 2021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을 국제법을 위반한 판결로 만들고, 지난 30년간 피해자들과 그들을 지원한 시민들이 주장해 온 '일본은 책임을 져라'라는 요구 역시 국제법을 어긴 주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다.
김 교수는 “한국을 잘못된 주장에 근거해 일본을 괴롭힌 나라로 만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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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간 협의 우선돼야” 주장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ICJ 제소가 아닌 양국 간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일 청구권협정 3조는 '협정의 해석·실시에 관한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로 해결하고 안 될 경우 국제 중재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위안부·강제징용 소송 활동을 주도해온 최봉태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장은 "협의 과정 없이 ICJ로 가는 것은 청구권 협정 자체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가 2011년 8월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대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후 10년 가까이 위헌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안 나서니 할머니가 오죽 답답하시겠나"라며 "일본 정부가 사죄를 안 하니 할머니 입장에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살아있을 동안에 사죄받고 싶다는 차원에서 ICJ 회부를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외교적 협의를 시도해보고, 해결이 안 될 경우 ICJ로 가는 건 괜찮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외교부는 16일 추진위의 제안에 "위안부 할머니 등의 입장을 조금 더 청취해보고자 한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위안부 피해자 등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원만한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일본 내에서는 집권 자민당 등이 한국 법원의 '일본 정부 위자료 지급'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ICJ 제소를 주장하고 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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