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침투였다면"..'헤엄 월남' 북한 남성, 제약 없이 5km 활보
3시간 지나서야 신병 확보
전수조사 했다던 배수로 또 뚫려
강원도 고성군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일대에서 우리 군에 붙잡힌 북한 남성이 월남 후 해안지역 5km가량을 제약 없이 활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복되는 군 경계 실패로 국민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동해안 경계업무를 맡고 있는 기존 부대마저 해체를 앞둔 만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이 월남 정황을 포착하고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장관으로서 국민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 남성은 전날 '머구리 잠수복'과 오리발을 활용해 군사분계선(MDL)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해안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합동신문 과정에서 자신을 민간인 20대 남성으로 소개한 월남자는 6시간가량 바다를 헤엄쳐 남측 해안가에 다다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남성은 육지에 다다른 이후 옷을 갈아입고 남쪽으로 이동해 해안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합참은 북한 남성이 남측 해안가에 상륙해 배수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감시장비가 몇 차례 관련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포착 시점과 횟수는 언급하지 않으며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계 임무 소홀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군이 해당 남성을 최초 인지한 시점은 전날 오전 4시20분께로 확인됐다. 군은 MDL에서 8㎞ 정도 떨어진 고성군 제진 검문소 폐쇄회로(CC)TV를 통해 북한 남성을 인지한 후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22사단과 8군단의 기동타격대를 현장에 보내 초동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은 관련 정황을 파악한 지 2시간이 지난 오전 6시35분이 돼서야 대침투경계령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돗개는 무장 탈영병이 발생했거나 적 침투가 예상될 때 발령된다.
북한 남성의 신병을 확보한 시점은 진돗개 발령 후 55분이 지난 오전 7시20분께로 확인됐다. 월남 정황을 최초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3시간이 지나서야 상황이 일단락됐다는 뜻이다.
박정환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은 "검문소 동북방 야지(들판)에서 수색병력이 (북한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군은 진돗개 하나를 오전 7시 29분에 해제했다.
해안서 검문소까지 7번 국도 따라 이동
"軍 할말 없을 것…책임 물어야"
신병 확보 과정을 되짚어보면, 북한 남성은 최초 상륙 추정 지점에서 5km 이상 떨어진 민통선 검문소 인근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7번 국도를 따라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에서 "만약 일반인의 귀순이 아니라 특수부대의 무장 침투였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꼬집었다.
군 당국이 △감시장비에 포착된 월남 정황을 초기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 △최초 인지 시점으로부터 2시간 뒤에야 진돗개를 발령한 점 △신병을 확보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늑장대응'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군 당국이 지난해 '헤엄 월북 사건' 이후 배수로 전수 점검을 실시했다고 공언한 지 6개월여 만에 배수로를 통한 월남 사건이 또다시 발생한 만큼, 대규모 문책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앞서 20대 탈북민은 지난해 7월 경기 김포에서 철망이 일부 유실된 배수로를 통해 한강 하구로 빠져나가 월북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배수로 문제는 강화도(탈북민 월북 사건)에서 똑같이 지적된 부분"이라며 "또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군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책임을 안 물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배수로) 전수검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지난해 월북 사건 이후 배수로 전수조사 지침을 일선부대에 내렸다면서도 이번 월남 사건 관할 부대인 "22사단에 48개 배수로가 있다. 오늘 보고 드린 그 배수로가 좀 보완이 안 된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전반적인 경계시스템 문제 있어"
"22사단 관할 지역 너무 커…조정해야"
일각에선 22사단 관할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경계 실패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만큼, 전반적인 부대 운영 현황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사건을 비롯해 △지난해 11월 '철책 귀순' △2012년 '노크 귀순' 등 22사단 관할 지역에서 여러 번 경계 실패가 벌어졌다며 "전반적으로 경계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22사단과 인접해 있으면서 속초·삼척 등의 동해안 일대를 관할하는 23사단이 조만간 해체될 예정이라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22사단의 책임 반경이 다른 사단에 비해 4배나 크다"며 "4배가 넓으면 장비·인원 등 모든 여건을 갖추고 책임을 추궁하고 문책해야 한다. 인원·장비 여건은 (여타 부대와) 똑같은데 구멍이 뚫렸다고 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역시 "22사단의 임무가 과중한 부분이 있다면 경계지역을 조정한다든지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22사단이 철책과 해안을 동시 경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연환경 등 작전요소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 부대 편성이 다른 부대보다 부족한 부분도 있다. 정밀 진단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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