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무지의 장막'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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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이 X염색체인지 Y염색체인지 모르는, 여성이 될지 남성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나는 양성평등 정책에 어떤 입장을 취할까.
내가 태어난 후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 극빈층 가정일지 부유층 가정일지 알 수 없다면 나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사회보장 정책 확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지금 내린 결론이 성별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수준, 정치적 입장, 시대적 상황을 떼어 놓고 생각했을 때도 같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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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이 X염색체인지 Y염색체인지 모르는, 여성이 될지 남성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나는 양성평등 정책에 어떤 입장을 취할까. 내가 태어난 후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 극빈층 가정일지 부유층 가정일지 알 수 없다면 나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사회보장 정책 확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에는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다. 롤스가 만든 가설적 상황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에서 제시되는 무지의 장막은 모든 조건을 백지화하고 따져보자는 실험적 아이디어다. 현실에서 정의의 개념에 합의하거나 정의를 달성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지위나 부의 정도,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정책이나 가치를 판단할 때 자신이 아직 그 누구도 아니라고 가정하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무지의 장막은 특정인이 남자일지 여자일지, 경제적으로 빈곤층일지 부유층일지, 정치적으로 진보적일지 보수적일지, 태어날 곳이 선진국일지 후진국일지 등의 조건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이상적인 판단을 해보자는 것이다. 기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심지어 모든 기득권을 잃게 될 가능성이 50%라면 대다수는 최악을 방지하는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기득권을 갖게 될 확률 50%에 베팅해 기득권자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겠다는 소수도 있겠지만 다수는 기득권자의 권리를 조금 더 떼어내어 기득권 없는 이들에게 나누자고 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롤스는 무지의 장막하에서는 누구든 남녀가 평등한 사회, 소득이 골고루 분배되는 사회, 정치 성향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를 지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의 위치에서라면 소득 분배 정책에 반대했을 부유층이라도 스스로가 빈곤층이 될 확률이 50%나 된다면 더 광범위한 소득 분배를 주장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추론이다.
물론 합리적 결론을 내린다 해도 그것을 실제에 반영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비주류에 오래 머물러 있다 주류가 된 집단 내에서 비주류 집단의 비판을 수용하자는 얘기를 꺼내면 반동적이라고 비판받을 확률이 높다. 당장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기꺼이 내려놓을 개인이나 집단은 거의 없다.
무지의 장막을 가정한 사고 실험은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목표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현실 세계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많은 개인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할 뿐 본질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정치는 이 지점을 이용한다. 개인의 이 같은 경향은 자칫 정치에 이끌려 공공을 위해 합리적이지 않은, 심지어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 결정에 가담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정의를 말한다. 어제는 정의라고 얘기했던 일을, 하루아침에 패악질이라고 선동하는 이들도 많다. 너도나도 정의를 말하다 보니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매일, 아니 순간마다 흔들린다. 나의 정의와 상대방의 정의가 엇갈리는 현실에서 역지사지는 불가능하다. 이럴 때 무지의 장막은 기준이 된다. 누군가 내세우는 정의가 ‘내로남불’ 식의 정의가 아닌지는 따져볼 수 있다.
지금 내린 결론이 성별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수준, 정치적 입장, 시대적 상황을 떼어 놓고 생각했을 때도 같을 것인가. 정의를 말하는 누군가의 결론이 합리적이려면 그의 지위와 입장과 상황이 바뀌었을 때에도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자리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는 무수히 보이는데 흔들리지 않는 정의는 찾기 어렵다. 그저 신독(愼獨)의 잣대로 삼을 뿐이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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