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거짓말과 오판이 부른 부동산 참사
정권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은 것
배드 뉴스는, 이런 얼치기 실험이
1년 더 계속될지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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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동산 대책이 안 먹히나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국토부를 향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부동산”이라며 “2·4 부동산 대책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과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부처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역대 최고 수준인 전국 83만6000호(서울 32만호)를 2025년까지 공급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안개 자욱한 눈치 보기 장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3.1%가 2·4대책이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공공 주도의 역세권 개발이 믿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 상실이다.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신문을 꼼꼼하게 읽으신다. 인터넷 댓글까지 읽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동산 기사에 달리는 이런 베스트 댓글을 보지 않았을 리 없다. “박근혜 때 반포 자이가 12억5000으로 뛰자 ‘부동산 때문에 나라 망했다’고 까더니 지금은 28억 한다.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시장에는 문재인 표 부동산 정책에 내성과 학습효과가 쌓일 대로 쌓였다. 웬만한 충격적 처방을 내놓아도 먹혀들기 힘든 분위기다.
문 대통령의 부동산에 대한 입장이 다소 바뀐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신년사에서 단 세 줄이지만 유감을 표명하면서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던 1년 전과 다르다. 하지만 정책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정책을 전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 간접적인 증거가 일주일 뒤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은 “작년 한 해 인구가 감소했는데도 무려 61만 가구가 늘어났다”며 부동산 혼란 원인을 1인 가구로 돌리려 했다. 이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정부와 서울시가 우리 사회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게 크나큰 패착이었다”며 “1인 가구와 가구 분리가 폭발적으로 늘었음에도 충분한 대비가 없었던 게 뼈아프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맞는 말일까.
1인 가구는 주범이 아니다
수도권 1인 가구 비중은 30%에 이른다.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집값 급등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에 비해 1인 가구의 대부분(69%)은 다가구·연립·다세대 주택에 산다. 특히 1인 가구의 38%는 보증금 있는 월세, 15%는 전세에 살며 자기 집을 가진 비율은 30.6%에 불과하다. 게다가 1인 가구는 아파트 청약은 꿈꾸기도 어렵다. 청약 가점에서 가장 큰 배점이 부양가족 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대통령이 언급한 ‘61만 가구 증가’는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통계에 따른 것이다. 실제 독립해 사는 1인 가구와 거리가 있다. 1가구 1주택 또는 무주택자에게 주택 청약과 세제 혜택이 늘면서 행정서류 상으로 가구를 분리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허수가 적지 않다.
설사 1인 가구 급증이 부동산을 자극했다고 하더라도 3~4인용 중대형 아파트는 가격이 오르지 않았어야 했다. 상대적으로 가구 수가 정체된 만큼 수요가 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평형을 가리지 않고 다 올랐다. 따라서 1인 가구를 부동산 주범으로 모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정책 실패에 물타기 하고 초점을 흐리려는 마녀사냥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엉뚱한 처방이 나오기 마련이다. 부동산 시장이 ‘획기적인 공급 충격’이라는 변창흠표 2·4대책을 믿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공공 주도의 역세권 개발은 3~4인용 주택과는 거리가 멀다. 자녀 교육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1인 가구용 소형 주택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는 시장이 원하는 3~4인용 양질의 아파트를 대량 공급할 수 없다는 의미다. 2·4대책의 치명적 한계다.
거짓말과 이념 과잉이 문제다
2018년 당시 장하성 정책실장은 “내가 살아보니, 모두 강남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때부터 강남 아파트는 이미 희귀재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공공 임대를 확 늘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나 도모하자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오랜 경험에 비춰봐도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 아파트는 지표종(種)이다. 강남 아파트값이 뛰면 마(포)·용(산)·성(동)→강북→수도권→지방으로 파급되는 수순을 밟아왔다. 주택값이 치솟으면 시차를 두고 전·월세도 올랐다. 따라서 강남 아파트를 놔둔 채 전국 집값과 전셋값을 잡겠다는 것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이념에 치우친 환상이다. ‘강남 아파트=투기꾼=적대 세력’이라는 정치적 편 가르기일 뿐이다.
추미애·유시민씨 등은 헨리 조지의 부동산 사회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낡은 반시장적 이념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임대차법도 2년간 ‘미친 전세’를 유예시켰을 뿐이다. 이제라도 강남 집값부터 안정시키는 게 중요하다. 시장에 재개발·재건축을 완화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실패는 반복된다. 좋은 주택이 합리적 가격에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언제까지 거짓말로 시장을 속일 수 없다.
진짜 주범은 정권의 오판
지난 3년 넘게 왜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는지 보여주는 3개의 통계가 있다.〈그래픽 참조〉 서울 아파트 가격이 80%나 뛰고 덩달아 주택 수요도 엄청나게 급증했지만 그동안 건설투자는 오히려 감소해 온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모순이다. 그만큼 부동산 규제로 꽁꽁 묶여 주택 공급이 얼마나 심각하게 위축되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이 시기 동안 부동산 공청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주거용 건설 수주액은 2015년 68조원→16년 76조원이었다가 2017년 68조원→18년 56조원→19년 65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20년에 간신히 70조원을 기록했다. 똑같은 통계는 아파트 분양 수에서도 확인된다. 2015년 51.7만 가구→16년 45.3만 가구였다가 2017년 32.6만 가구→18년 29.7만 가구→19년 33.4만 가구로 급속히 감소했다. 이에 비해 서울 아파트의 평당 평균 분양 가격은 2015년 1836만원→16년 2070만원→17년 2115만원→18년 2287만원→19년 2573만원으로 갈수록 급격히 뛰었다.
한마디로 지난 3년 내내 아파트 가격이 뛰는데도 거꾸로 주택 수주와 아파트 분양은 쪼그라들었다. 문재인 정권과 박원순 서울 시장은 엉뚱하게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핏대를 세웠다. 그러면서 “투기꾼과 다주택자들이 문제”라며 세금 방망이만 휘둘렀다. 시장에서 수요는 팽창하는데 공급이 막히면 어떻게 되는지 초등학생들도 안다. 결국 정부의 오판이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참사의 피해를 서민들과 무주택자들이 고스란히 짊어진다는 점이다. 부동산 민심 악화는 문재인 정권의 자업자득이다.
서울시장 선거가 게임 체인저 되나
부동산 시장은 2·4대책보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주시하고 있다. 부동산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길은 크게 4가지다. ①기존의 낡은 아파트 단지 재건축 ②낙후 지역의 재개발 사업 ③3~4기 신도시 ④역세권 개발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 주도를 원칙으로 ③과 ④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양질의 주택을 빠르게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것은 ① ② ③의 순서다. 그것도 용적률 상향 조정 등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민간 주도에 맡겨야 신속하게 진행된다.
현재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들은 문재인·박원순 부동산 정책 노선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국민의 힘 후보들은 ‘민간 주도’로 방향을 정했다. 안철수 후보도 “주택 건설은 기본적으로 민간의 주도로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에 방점을 찍는 것도 야당 후보들의 공통점이다. 따라서 만약 야당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민간 주도의 ①과 ② 옵션이 추진될 공산이 크다. 부동산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금 무주택자들이 집을 사기엔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폭탄을 앞두고 절세용 매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향후 집값의 대폭적인 추가 상승에 고개를 흔드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지난 3년간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점이다. 둘째는 4월에 야당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경우다. 셋째, 문재인 정권이 4월 보선에서 패배하거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껴 부동산 정책을 통째로 바꿀 가능성이다. 시장 친화적 방향으로….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변동-위기·선택·변화』에 따르면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첫 단추는 위기를 있는 그대로 위기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다음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적극 수용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 후 좋은 본보기를 찾아 나가는 게 지혜로운 수순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도 과연 부동산 위기를 스스로 극복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요즘 부동산 시장에는 똑같은 굿 뉴스와 배드 뉴스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좋은 뉴스라면 24번이나 대형 사고를 친 아마추어 정권의 임기가 이제 1년 3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고, 나쁜 뉴스라면 이런 얼치기 실험이 아직도 1년 3개월이나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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