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학폭과 지연된 정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이 있다. 길고 지난한 재판 절차를 비판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19세기 영국 총리를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1898)이 가장 먼저 이 표현을 썼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도 『버밍엄 감옥에서의 편지(1963)』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를 부정하는 것(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이라고 썼다.
사실 누가 먼저 이 말을 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의를 대변하고 옹호한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올바른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그것이 너무 늦어진다면, 피해 구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메시지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학교폭력(학폭)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남녀 프로배구 선수들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잇달아 폭로되면서다. 소속 구단은 이들에게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고, 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도 최근 학폭 논란으로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하거나 구설에 올랐다.
의혹은 제각각이지만 사건의 흐름은 대체로 비슷하다. ①가해자가 유명해지고 주목받는다 → ②피해자가 오래전 고통을 떠올린다 → ③소셜미디어(SNS)로 폭로에 나선다 → ④여론이 악화되고 가해자가 사과한다 → ⑤뒤늦게 징계가 내려지거나 퇴출된다는 흐름이다.
이쯤되면 SNS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학폭의 피해자들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세월을 약 삼아 하릴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가해자들을 징계할 수 있게 됐으니 SNS가 가진 순기능 하나를 발견한 걸까. SNS가 때론 사이버 학폭의 도구로도 활용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긴 하다.
그러나 때늦은 폭로와 처벌은 학폭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금도 어디선가 숨죽여 SOS 신호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기다리다 보면 가해자가 유명해질 날이 온다’고 다독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뒤늦게 학폭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제에 선제적으로 학폭을 예방하고 조기 발견하는 방법을 절박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못하면 10년, 20년 후 피해자의 폭로는 다시 나온다. 그렇게 정의는 또 지연된다.
장주영 EYE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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