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가야금 공부 30년 만에 귀가 맑아졌다
1시간짜리 산조 녹음 작업
소리 몰두하며 나를 찾아
스승들의 열정·향기 새록
끝이 불투명한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일상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그 덕에 지난 30여년 갈망해온 프로젝트에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1시간짜리 가야금 산조 녹음이다. 조선 후기 궁중 음악가들로부터 ‘허튼 가락’, ‘산란한 선율’ 이라 조롱받던 산조는 시나위나 호남 민속 음악에서 진화한 전통이 더해져 오늘날 ‘예술 음악’의 현란한 독주 장르가 됐다.
겨울 방학 중에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개인 교습을 받았는데, 소리에 완전히 몰입하면서 지난 수십 년 스승님들이 해 준 말씀들의 의미가 속속 체화하고 있음에 스스로 놀랐다. 이 모두가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인 친구도 이런 얘기를 하며 나와 공감했다. 우리는 물론 소리를 내는 법을 이미 배웠지만 30년을 공부한 후에야 비로소 귀가 ‘맑아지기’ 시작한 것일 뿐이라고.
1992년, 내가 국립국악원의 장학금으로 가야금을 공부하러 처음 한국에 온 시절에는 인터넷도, 이메일도 없었다. 일본 전통 악기인 고토와 중국 전통 악기인 고쟁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도 비슷한 악기인 가야금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한국으로 왔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하기 위해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어야 했던 시절, 내겐 한국어를 배우고 가야금을 연습하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5년 가까이 국립국악원의 훌륭한 음악가들로부터 가야금과 한국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배웠다.
그때만 해도, 조선 말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궁중음악원인 이왕직 아악부에서 궁중음악인·무용수가 되기 위해 공부한 분이 살아 계셨다. 1923년 순종의 쉰살 생일 축하연에 출연해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舞童)으로 불린 김천흥(1909~2007)선생.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처용무의 초대 보유자이자, 종묘제례악(해금·일무) 보유자였다. 김천흥 선생과 8시간 판소리를 완창한 박동진(1916~2003) 선생 등 국립국악원 이곳저곳에서 만난 국보급 명인들은 미국에서 가야금을 배우려고 온 나를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그 격려에 힘입어 그분들의 무대를 본 날이면 5000원에 노래방을 빌려 거기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저녁 즈음엔 공공 문화 센터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장구, 민요를 즐겁게 배웠다. 음악가들에게 둘러싸여 음악에 몰입하면서 나는 가야금이란 악기의 깊은 매력과 이를 둘러싼 문화를 익혀갔다.
오늘날 우리 대다수의 삶이 그렇듯 내 삶도 인터넷 안에서 영위되고, 우리가 듣고 알고 있는 음악 또한 이 새로운 디지털 문화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더는 테이프와 CD를 소장하지 않는다. 매해 더 많은 이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소리를 빌려 듣고 있다. 국악 역시 이런 상황에 맞춰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와 더불어 한국인들은 점점 전통음악과 멀어지고 있고, 산조 같은 장르들은 이 땅에서 싹튼 음악임에도 이국의 음악처럼 여긴다.
요즘 사람들은 뉴스도 누군가 한번 걸러낸 뉴스를 소비한다. 음악 감상 역시 스스로 쌓은 내공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연주자가 어느 대학 출신인지, 이른바 ‘전문가’들이 어떤 가이드를 줬는지 등을 토대로 공연을 평가하고 비교한다. 개인의 감상을 결정하는 데에도 비 음악적 요소가 더 크다는 얘기다. 매체가 넘치다 보니 공연 후 자신의 느낌에도 확신이 없다. 공연장을 떠나기 전, 혹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가 무엇을 느꼈어야 했지?’하는 마음으로 기존 리뷰를 찾아본다. 팩트 추구보다 정치 평론가가 걸러낸 말을 먼저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오도되듯, 사람들은 이렇게 문화적으로도 ‘문맹’이 되어 간다.
전통이 방황하고 있다. 이는 특정한 장르, 악기, 작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 국가에서 ‘무엇이 전통인가’에 대한 광의의 공감대가 흐려지면, 국가의 정체성도 사라질 수 있다. 국가적인 염원을 이루는 것이 문화 전통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이지만, (6·25전쟁 이후 국립국악원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판소리의 계면조를 금지하는 ‘북한의 소리’에 맞서며 한국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오늘날 한국에서 ‘국악’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기 어렵다. 21세기 한국의 ‘민족 음악’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은 무엇인가?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 앞에 붙이는 ‘K’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가야금을 공부하면서 나는 간접적으로 정보를 접할 때와 직접 진리를 깨쳐 나갈 때의 차이가 무엇인지 배웠다. 한국에 체류한 수십 년을 지난 몇 개월간의 연습으로 돌이켜보며, 그동안 스승들이 내게 들려준 말씀 하나하나의 맛과 향, 그리고 그 다채로운 색이 내 뼛속 깊이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들이 내게 준 정성과 열정이 깃든 정확한 가르침들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귀와 마음이 열리는 공간을 만들며 기억 속 벽돌을 쌓는 과정을 만들고 있다. 마침내 미세한 근육들에 굳은살이 켜켜이 쌓이고 때로는 피부에 생채기를 내면서 음악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과정 자체야말로 오늘날 잘못된 정보 홍수 속에 파묻힌 진실의 성소(聖所)가 아닐까.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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