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창피하다해도..' 용달업 나선 어르신들, 3일 취재기
용달업 허가 번호판 사려 시장 기웃
물동량 감소에 수입 줄어들어 씁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성동구 장한평중고자동차매매시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고모(73)씨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용달업을 하기 위해 본인 소유 개인택시를 팔러 시장에 왔지만 막상 앞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나와 개인택시 매매 시세를 확인하고 중고 1t 트럭도 여러 대 둘러봤지만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30년 동안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고씨가 용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생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아내가 3년 전부터 요양병원에서 치매 치료를 받고 있는데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승객이 급감해 매달 18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택시 수입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심지어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자 저녁 손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 됐다. 월 300만원 수준이던 고씨의 수입은 반토막 났다.
고씨는 “서울 개인택시 번호판이 9000만원 정도 하는데 용달차는 번호판 가격이 2600만원 정도라서 용달차로 갈아타도 번호판값을 조금은 남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씨는 “실어나를 사람이 없으면 물건이라도 운반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자영업자의 줄폐업이 이어지자 개인 용달업을 최후의 생계수단으로 선택하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 초기 투자비 및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숙련된 기술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용달업 종사자들은 용달업도 경쟁이 치열해지는 추세에 있고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용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반면 코로나19 여파로 물동량 자체가 감소하면서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고령에 지병이 있어도 몸을 혹사하며 일하는 용달업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운송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용달업 ‘쏠림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중고차매매업을 하는 50대 여모씨는 “용달차를 내놓는 사례는 거의 없는데 반대로 용달차 구매는 지난해부터 한 달에 적어도 3건 이상씩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40년간 자동차매매업을 해왔다는 A씨도 “체감상 코로나19 이전 대비 20% 이상 용달차 구매 수요가 늘었다”고 전했다.
경기도 고양에 사는 김모(56)씨도 서울의 한 식자재 납품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력 감축으로 고용불안을 겪고 있던 중 중고 용달 트럭을 알아보러 중고차 시장을 찾았다. 25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더 이상 4인 가족을 부양하기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씨를 가장 압박하는 것은 자녀 교육비다. 첫째 딸은 올해 대학생이 돼 자취를 시작했다. 중학생인 둘째 딸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입시 준비에 들어간다. 김씨는 “특기가 운전밖에 없는 나로서는 돈 벌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용달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개인용달 사업자등록을 하면 코로나19 재난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당분간 현 직장보다 수입이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김씨의 마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다. ‘자녀들이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택시기사까지는 자신있게 대답하지만 용달업자라고는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고충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용달업도 코로나19 불경기의 도피처가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감도 줄어들고 노약한 몸으로 무리하게 작업하다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화양검사정비사업소 앞에서 만난 고모(64)씨는 용달업에 종사한 지 올해로 30년차다. 공장과 시장에 옷감을 실어나르던 일을 주로 하던 그도 코로나19로 봉제공장이 하나둘씩 폐업하자 강제 휴업하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고씨는 “코로나19 이후 월수입이 100만원을 못 넘길 때가 많다”며 “4년 전 화물을 끈으로 고정하다 물건이 엎어지는 바람에 손목이 부러졌는데 최근 증상이 재발했지만 운전대를 놓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동료가 공장용 대형 냉장고를 트럭에 싣다가 냉장고에 깔려 뇌진탕으로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고 한다. 고씨는 “모아놓은 자금은 없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으니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두렵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이모(71)씨는 개인용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이씨는 “코로나19 이후 미허가 불법 용달업자까지 가세하면서 한 달 수입이 120만원이 안 될 때도 많다”고 전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씨는 체력이 나빠진 탓에 맡을 수 있는 일이 줄어들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택시처럼 용달 일감을 중개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미숙한 그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이씨는 “주선업체에 일일이 찾아가 대금의 15%를 수수료로 내고 일하는데 요즘은 사실상 남는 게 없다고 보면 된다”며 고개를 떨궜다.
글·사진=최지웅 박성영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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