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겐 딱 이것만 주면 된다, 자유"
“자녀 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아이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자유는 곧, 선택이다. 아이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사진) 교수가 강조하는 자녀 교육법의 요체다. 그에게 물었다. 크게 보면 역시 두 가지 물음이다. “자식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가?” “그걸 어떤 식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면 되나?”
#풍경1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102세이다. 그래서일까. 상당히 공격적인 질문을 던져도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담담하게 풀어갈 따름이었다.
성경을 보면 최후의 만찬 때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대목이 마가복음, 누가복음, 마태복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4복음서 중에 가장 후대에 기록됐다는 요한복음에만 보인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 여부를 놓고 종종 논쟁이 벌어진다.
김형석 교수는 기독교인이다. 그는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성경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게 역사적 사실 여부인가. 예수님이 제자들 발 씻어주는 일이 진짜인가, 아닌가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 김 교수가 중시하는 건 대체 뭘까. “정말 중요한 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크게 받아들여라.”
#풍경2
사람들이 작은 일로 논쟁할 때, 그는 ‘큰 일’을 짚었다. 큰 그림과 핵심을 짚어내는 ‘큰 눈’(안목)이 있어서다. 그런 김 교수가 보는 ‘자녀 교육법’은 어떤 걸까.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정말 중요한 게 뭘까.
Q : 많은 부모가 자녀 교육 때문에 힘들어한다. 어떤 게 ‘정답’인지 몰라서다. 자녀 교육에도 정말 중요한 핵심이 있나.
A : “핵심이 있다. 그건 부모가 아이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
Q : 아이의 자유, 그게 왜 소중한가.
A :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 그 사람의 돈인가, 아니면 명예인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 아이의 성적인가, 아니면 재능인가. 여기에 답해 본 적이 있나.”
김 교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조건이 있다. 가장 중요한 첫째 조건이 뭘까. 이 조건을 충족할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Q : 그 조건이 뭔가.
A : “그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거다. 상대방의 자유를 사랑하는 거다.”
Q : 우리는 자식이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길 바란다. 그런데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왜 그래야 하나.
A : “나는 한국전쟁 발발 전에 공산주의 치하의 평양에서 2년간 살았다. 살아보니 공산주의 사회에는 사랑이 없더라. 왜 그런지 아나?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자유를 구속하는데, 어떻게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식도 마찬가지다.”
#풍경3
대답을 듣다가 ‘첫 단추’가 떠올랐다. 세상 모든 일에 첫 단추가 있듯이, 자녀 교육에도 첫 단추가 있구나. 그걸 잘 꿰어야 나머지도 잘 꿰어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는 일. 그게 ‘첫 단추’이구나. 그래도 물음표는 여전히 남았다.
Q : 아이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어떡하면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길 수 있나.
A : “자유는 곧, 선택이다. ‘이걸 해! 저걸 해!’가 아니라 ‘이런 게 있고, 또 저런 게 있어. 너는 어떤 걸 할래?’ 이렇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한다.”
Q : 선택의 자유를 주면, 어떻게 되나.
A : “아이에게 근육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자신의 삶을 헤쳐갈 마음의 근육이다. 나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종종 강연을 한다. 다른 사람의 강연도 듣곤 한다. 강연자는 통상 말미에 결론을 내린다.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다. 그러니 이걸 해라. 이렇게 결론을 낸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Q : 그럼 어떻게 하나.
A :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나는 이렇다. 내 친구는 보니까 저렇다. 여러분은 어떤가. 선택은 여러분이 하라. 이렇게 말한다.”
Q : 왜 그렇게 말하나.
A : “청중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도 똑같다. 부모가 왜 아이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걸까.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Q : 만약 아이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A : “자신의 일을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의 자아가 없어진다. 자신의 중심이 사라진다. 자식이 아주 어릴 때는 보호해줘야 한다. 조금 더 자라면 유치원에 다닌다. 그럼 부모와 자식이 손잡고 같이 간다. 스승과 제자가 같이 다니듯이 말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다닐까? 사춘기까지다.”
Q : 사춘기 다음에는 어떡하나.
A : “아이를 앞세우고 부모가 뒤에 간다. 선택은 네가 해라. 자유는 선택의 기회를 갖는 거니까.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니까. 이러면서 말이다. 나는 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풍경4
교육학의 대가인 장 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이다. 그러니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라. 아이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라”는 김형석 교수의 메시지는 루소의 철학과도 상통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부모가 느슨한 끈을 잡고서 자녀를 방목하라”고 했다. 그걸 ‘아름다운 방목’이라고 불렀다. 방목을 하다 보면 아이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런 시행착오를 몸소 겪는 일이야말로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보석 같은 거름이 아닐까.
김형석 교수의 ‘자유와 선택’도 그렇다. 자기 선택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한다. 거기서 온갖 문제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일이다. 결국 인생의 문제를 통해 인생의 솔루션(해법)을 찾는 법이다. “아이의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물어보라는 날 선 질문은 참으로 놀랍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아이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라”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라”는 그 메아리 말이다.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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