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남편 못 만나 애타..AZ백신이라도 맞게 해달라"
고위험 고령층 일러야 4월 접종
당장 AZ백신 맞을지 선택권 줘야
미국 "백신이 요양병원에 자유 줘"
#김모(74)씨는 지난해 대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40대 후반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부인 정모(70)씨가 집에서 돌봤지만, 정씨마저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요양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정씨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 환자에게 제일 먼저 맞힌다 해 기대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아쉽다”며 “어떤 백신이라도 빨리 맞을 수 있다면 좋겠다. 지난 설에도 면회하지 못해 속이 터질 것 같다. 어서 백신을 맞고 얼굴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굿 시퍼드’ 너싱홈(요양원)은 최근 “드디어 그날이 왔다”고 환호했다. 뉴욕타임스는 ‘백신이 자유를 가져오다’란 제목의 16일자 기사에서 정상을 되찾는 모습을 소개했다. 1년간 192명의 노인이 방에서 밥을 먹었고, 빙고 게임을 못하고, 가족과 단절된 끔찍한 세월을 보냈다. 웨스트버지니아주는 너싱홈 거주자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2회 접종을 가장 빨리 마쳤다. 베티 루 리치(97)는 머리를 산뜻하게 말아 올려 멋을 낸 후 1년 만에 식당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녀는 “식사가 너무 흥분된다”며 치즈버거와 토마토 수프를 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하고 주사위 게임을 즐겼다.
한국과 미국의 노인시설의 다른 모습이다. 65세 이상 한국 노인들은 당분간 어떤 백신도 맞지 못한다. 일러야 4월에 맞는데,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보건당국이 요양병원·요양원의 고위험 노인 환자 37만700명의 AZ백신 접종을 두 달가량 미루면서 일정이 꼬였고, 고위험 노인들이 여전히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백신 접종 우선순위와 관련해 “의료시설 종사자가 첫 번째, 다음이 사망자가 많은 요양시설의 고령 어르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오락가락 끝에 요양시설 노인을 후순위로 밀어냈다. 질병청은 지난달 28일 AZ백신을 요양시설 환자와 종사자에게 맞히겠다고 했고, 이달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증자문단도 “고령자 투여를 배제할 이유 없다”고 뒷받침했다. 그런데 5일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부정적 의견을, 8일 질병청 브리핑에 참석한 전문가는 강한 긍정 의견을, 10일 식약처는 “의사가 판단하라”고 부정적 의견을, 15일 질병청은 보류를 확정했다. 보름간 국민은 헷갈렸다.
질병청 관계자는 “식약처가 허가사항에 AZ백신의 65세 접종을 ‘의사가 알아서 하라’고 권고하는데, 우린들 어떡하겠느냐”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는 자료를 근거로 과학적 판단만 한다. 노인에게 맞힐지 말지는 방역이나 백신 수급 상황을 고려해 질병청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15일 기준 전체 사망자의 40%가 요양병원·요양원 관련 사망자다. 일반 병원으로 옮겨 숨진 사람을 포함하면 절반이 넘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사이 요양병원에서만 219명이 숨졌다. 앞으로 두 달간 요양병원·요양원에서 300~400명이 더 숨질 가능성이 크다. 80대는 전체 사망률의 11배, 70대는 3.5배에 달한다.
전문가 “어떤 백신이든 고령층 먼저 맞게 해야”
이런 점을 우려해 대한요양병원협회가 15일 “원하면 AZ백신을 맞게 해달라”고 질병청에 정식으로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회가 최근 요양병원 3곳의 환자·보호자 330명을 조사해 보니 20~30%는 AZ백신을 거부했다. 나머지는 ‘맞히면 맞겠다’는 입장이다. 손덕현 회장은 “우리 병원 간병인의 20%가 노인인데 이들도 못 맞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불신이 커진다. 대구 달서구 상록수실버타운 김후남 원장은 “우리 요양원 직원(모두 64세 이하) 3분의 2가 AZ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한다. 이들은 ‘의사는 화이자 백신을 맞는데, 왜 AZ백신을 맞아야 하냐’고 불만을 표한다”며 “정부가 일관성을 잃으면서 불신이 번졌다. 대구의 다른 요양원도 마찬가지라서 대구시에 대책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다음달 말 들어온다는 화이자 백신 50만 명분을 포함해 어떤 백신이든 먼저 요양시설 노인에게 맞히자고 제안한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창원 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은 “빨리 놔야 하는데 백신이 없는 게 문제다. 노인이 원한다면 AZ이든, 화이자든 맞도록 해야 한다”며 “백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들여오는 게 답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다 보니 계속 꼬인다”고 말했다.
행복요양병원에 어머니(89)를 둔 현두수씨는 “뭐든지 빨리 맞게 해달라. AZ백신 접근이 쉬우니 그거라도 맞게 해달라”며 “향후 요양병원에서 확진돼 숨지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항변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요양병원·요양원 노인이 AZ백신을 원한다고 맞히면 결국 백신 선택권을 주는 꼴이 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이우림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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