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백신접종 시작..공급 늦어 일반 국민엔 느림보 접종

이영희 2021. 2. 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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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우선접종 후 안전성 확인
65세 이상은 4월부터 맞을 계획
고노 "국민 내년 2월까지 접종"
올림픽 전 집단면역 불가능해져
일본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17일 도쿄 메구로구에 위치한 국립 도쿄의료센터의 아라키 가즈히로 원장이 일본 내 첫 백신 접종 대상으로 선정돼 주사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전 9시 일본 도쿄 메구로(目黒)구의 도쿄의료센터. 아라키 가즈히로(新木一弘) 센터 원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임시 접종소에 들어와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의사가 “자 들어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주삿바늘을 찔렀다. 접종에 걸린 시간은 20초였다. 아라키 원장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많은 국민이 안심하고 접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코로나19 백신 접종 일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에서 이날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전국 100개 국립 의료기관에서 의사·간호사 등 의료 종사자 4만 명이 우선 맞는다. 도쿄의료센터에선 이날 1호 접종자인 아라키 원장을 비롯해 12명이 맞았고, 이어 스태프 800명이 1차 접종을 받게 된다. 의료 종사자 4만 명은 백신의 안전성를 확인하는 모니터링에 자원한 이들이다. 이들 중 2만 명은 접종 뒤 7주간 발열·통증 등을 확인해 후생노동성에 보고한다. 3월 초 이들에 대한 2차 접종이 끝나면 전국 의료진 370만 명에 대한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4월부터는 65세 이상 고령자 약 3600만 명에 이어 기저질환자 820만 명과 고령자 시설 근무자 200만 명이 차례로 백신을 맞는다. 65세 이하 일반 국민은 여름 이후 접종하게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의 백신 책임자인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 담당상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내년 2월 말까지 1년을 접종 기간으로 잡고 수급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코로나19 백신 계약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접종 장소는 각 지자체가 결정한다. 4월 대규모 접종이 시작되면 체육관 등 대형 시설의 ‘집단 접종’과 개인병원의 ‘개별 접종’을 병행할 계획이다. 도쿄의 스모 경기장인 ‘료코쿠(兩國) 고쿠기칸(國技館)’에서도 선수와 지역주민이 함께 접종하게 된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일본은 지난해와 올해 초에 걸쳐 한 사람이 2회씩 맞는 화이자 백신 1억4400만 회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억2000만 회분, 모더나 백신 5000만 회분을 각각 들여오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접종 시작은 미국·유럽보다 2개월 이상 늦어졌다. 일본에서 백신 사용 승인을 받으려면 국내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AZ 백신 65세 이상 접종 여부는 미정

현재까지 화이자 백신만 후생노동성의 사용 승인을 받았으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65세 이상 고령자 접종 여부에 대해 고노 담당상은 “후생노동성이 심사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일본은 3월까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3000만 회분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전 국민이 하루라도 빨리 접종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지고 환경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전 세계적인 ‘백신 대란’으로 물량이 예정대로 공급될지는 불확실하다. 일본은 화이자 백신을 유럽 공장에서 공급받는데, 유럽연합(EU)이 수출을 규제해 운송 항공편이 출발할 때마다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고노 담당상은 지난 16일 TV아사히 ‘보도 스테이션’에 출연해 “EU와 일본은 관계가 좋다”며 “외무성도 EU의 협조를 얻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사람들 백신 얼마나 맞았나

각국의 백신 확보 경쟁 때문에 이처럼 외교 당국까지 발 벗고 나섰지만 향후 공급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화이자 백신의 1차 물량 40만 회분은 이미 도착했고 다음주엔 2차분이 들어오지만, 그 뒤의 공급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접종은 시작했지만 백신 부족에 대비한 플랜B는 아직 마련하지 못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일본 국민의 60~70%가 항체를 보유해 ‘집단면역’을 이룰 시기도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와 모더나 백신이 승인을 거쳐 공급에 들어가면 일정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은 있다. 화이자는 백신 주문이 몰리자 올해 생산량을 당초 계획인 13억 회분에서 20억 회분으로 늘렸다. 지난주엔 독일 마르부르크에 새 공장을 가동해 그곳에서 올 상반기에 2억5000만 회분의 백신을 생산할 예정이다. 일본 당국은 이 공장의 백신이 자국에 공급되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백신 특수 주사기 지연도 걸림돌

일본 정부는 7월 23일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그동안 “올림픽 이전에 국민 모두에게 접종할 백신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17일 발표한 일정표에 따르면 65세 이하 일반 국민에 대한 백신 접종을 언제 시작할지도 불확실해 올림픽 전 집단면역은 불가능해졌다. 고노 담당상도 “백신 접종과 관련해 올림픽 일정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화이자 백신 한 병에서 6회분을 추출할 수 있는 특수 주사기를 준비하지 못해 당분간 5회분만 추출하는 일반 주사기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일본이 특수 주사기를 충분히 확보하려면 가을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도 등 전국 10개 지역에 발령한 긴급사태 선언을 조기 해제하지 않고 예정대로 3월 7일까지 이어갈 방침이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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