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귀순' CCTV에 4번 포착됐지만, 아무 조치 없었다
작년 훼손된 배수로도 그대로 방치
무덤 옆 낙엽덮고 자던 귀순자 발견
"석달 전 월책귀순 이어 기강해이"
북한군이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을 전후해 특별 경계령을 내린 사실을 군 당국이 파악하고도 북한 민간인의 ‘헤엄 귀순’ 경계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중앙일보 2월 17일자 2면〉. 17일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은 광명성절을 앞두고 접경 일대에 경계 근무 강화 지침을 내렸다. 또 헤엄 귀순 당시 군의 관측·경계 장비에 네 차례나 포착됐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했고, 3시간 동안 수색 소동을 벌인 뒤에야 낙엽을 덮고 잠 든 상태에서 신병을 확보했다.
소식통은 “북한군은 15일부터 경계 수위를 최고 단계로 높였다”며 “이번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국경을 봉쇄한 상황이라 북한군 전방 부대장들이 어선 출입까지 통제할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매년 김정일 생일 무렵 이뤄지는 조치이기 때문에 우리 군 당국도 이를 잘 알고 예의주시한다”고 설명했다.
귀순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 해안은 육군 22사단이 경계를 맡은 지역이다. 이 부대는 지난해 11월에도 북한 남성이 철책을 넘어 민통선(민간인 통제선)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불과 석 달 전 ‘월책 귀순’으로 질타를 받았던 부대이고, 당시 사단장이 계속 근무 중인데도 또 경계에 실패한 것은 기강 해이로 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4시 20분쯤 강원도 고성군 민통선 안의 통일전망대 인근 검문소에서 한 남성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나타났다. 하지만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은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브리핑에서 “민통선 검문소에서 미상 인원(북한 주민)을 식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화면에 나타났는데도 놓쳤다는 뜻이다. 군은 오전 6시 35분에서야 대침투 경계령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군 소식통은 “일반인이 봐도 눈에 띌 만큼 선명한 사람의 움직임이 CCTV에 네 차례나 포착됐는데도 경계 병력이 그냥 지나쳤다”고 말했다.
군이 사후 해안선을 수색한 결과 해안 철책선 인근에서 발자국과 간이 잠수복, 오리발이 발견됐다. 또 해안선 철책 아래 배수로 차단막이 훼손된 상태였다. 20대인 북한 남성은 헤엄을 쳐 남쪽으로 내려온 뒤 옷을 갈아입고 배수로를 통해 해안선 철책을 넘은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했다. 서욱 국방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 남성은 자신이) 민간인이며, 잠수하고 수영한 게 6시간 내외라고 진술했다”고 답했다.
군 당국은 지난해 7월 한 탈북민이 낡고 허술한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뒤 “전면적으로 배수로를 점검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북한 남성은 상륙 후 해안 철책 아래 배수로를 통과해 민통선 안에서 3시간 정도 배회한 뒤 군에 붙잡혔다.
군 소식통은 “수색 병력이 신병을 확보했을 당시 북한 남성은 무덤 옆에서 낙엽을 이불처럼 덮고 자고 있었다. 극도의 추위와 피곤으로 쓰러진 반송장 상태에서야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은 국방위에서 “변명의 여지 없는 경계 실패”라며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서 장관은 “장관으로서 국민께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철재·김상진·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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