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 시대의 #연애 그리고 #스킨십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잠시 꺾였던 지난가을, 4년 가까이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 A의 다음 행보는 망설임이 없었다. 틴더를 깔고 프로필 사진을 올리고 회사 근처 5km 내외에 거주하는 남자 네 명과 만남을 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재택 근무’와 ‘회식 없음’이 국가적으로 권장되는 상황은 서로의 스케줄을 조절하는 것을 한결 용이하게 만들었으므로. 단체 채팅방에 속한 모두가 A의 새로운 여정에 귀를 기울였고, A가 그중 한 명과 꽤 잘돼가고 있다는 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스무 살 때부터 지켜본 A는 특별히 ‘스킨십’이나 ‘진도’에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4년에 걸친 관계에 그만 감을 잃은 걸까? 그냥 서로 동물적으로 끌리지 않는 것 아니냐, 둘 다 위생 관념이 너무 철저한 것 아니냐 등 단체대화방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다른 한 명이 쐐기를 박았다. “그럼 둘이 손잡고 선별진료소 가서 코로나 검사라도 받든가!” 맙소사. 성병 진단서의 필요성과 합리성을 스치듯 들은 적은 있으나 코로나 검사 키트라니? 하지만 마스크와 거리 두기가 일상화된 시대. 성욕과 본능적 이끌림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건 틴더에 갇힌 이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가 관계를 둘러싼 풍경을 바꿔버렸음을 인정해야 할 때다. 사람들의 성행위를 분석하는 킨제이 연구소조차 ‘코로나 시대의 섹스와 관계(Sex and Relationships in the Time of COVID-19)’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할 정도니까. 물론 자가격리 중 옆 건물 옥상에 사는 여성에게 반해 드론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다는 브루클린의 사진가 제레미 코헨의 이야기는 제법 로맨틱하지만(그래도 꽃다발을 들고 초대형 에어버블 속에 들어가는 건 좀 과했다), 현실은 거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키스하다가 방역 수칙 위반으로 50만 원 상당의 벌금을 물었다는 한 이탈리아 커플의 에피소드에 가깝다. BBC 또한 영국, 미국과 중국, 스페인 등 세계 각지의 20~30대에게 코로나 시대가 연애에 미친 영향을 기사화한 적 있다. 해당 기사에 인용된 코멘트를 볼까? “만나는 사람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과 온라인에서 데이트하는 건 많이 달라요. 바이러스가 많은 제약을 만들었으니까요.” “둘 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않았는지 확신할 수 없는데 어떻게 완전한 타인을 만날 수 있겠어요? 위험하죠.” 타인에 대한 공포가 한층 극대화 되고 이미 친밀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게서 상대적인 안전함을 느끼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A가 유별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미 안정적인 관계에 접어든 커플의 연애 생활은 어떨까? 연애 2년 차, 남자친구와 함께 산 지 1년 차에 접어든 친구 B는 분명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둘 다 약속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번 연말연시는 가까운 지인 한두 명을 집으로 초대한 것을 제외하고 조용하게 보냈어. 우리가 서로에게 친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지. 그리고 평일에 느긋하게 하는 모닝 섹스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 재택 근무 덕이야. 예전엔 둘 다 허겁지겁 출근하기 바빴으니까.” 결혼까지 고려하던 C의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애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PT 숍이 잘돼서 조금 규모가 큰 분점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이 심각해진 거야. 경제적 문제가 생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관계도 우울해지더라고. ‘너라도 안정적인 직장이라 다행’이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잘 맞는 게 많아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 생각을 한 건데 요즘은 섹스도 시들시들해.” 실제로 경제적 압박과 실직 등의 스트레스는 리비도를 죽이고, 성적 욕구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물론 모임에 나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수 없다거나, 소개팅받기도 쉽지 않다는 말이 핑계처럼 들릴 정도로 시대 흐름과 상관없이 새로운 연애를 잘만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친구 D는 지난여름 단골 동네 카페에서 속칭 ‘번따’를 당한 경우. 비교적 순탄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나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역시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애인을 만나는 후배 E의 이야기도 들어볼 만하다. “부모님 연세가 많아서 걱정된다고 가끔만 보자고 한다니까요? 정작 회사 사람들과는 밥도 먹고 다 하면서…. 아무리 만난 지 얼마 안됐지만 내가 가족이나 직장 동료보다 뒷전인가 싶어 섭섭해요.” 글쎄, 그건 ‘그냥 너를 별로 안 좋아해서가 아닐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넓고 효자는 많으므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 사랑에 빠지는 것도, 만남을 결정짓는 것도 두 사람의 몫이다. 여전히 처음 본 상대방의 마스크를 벗기고 입 맞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데이트 방식이나 경제적 어려움 같은 갈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특수한 상황이 나와 타인의 경계를 보다 명확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낯선 이의 기침 소리에 흠칫하고, 마스크를 턱까지 대충 걸친 거리의 누군가에게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익숙해진 시기에 이런 감정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일본의 젊은 시인 사이하테 타히가 ‘마스크의 시’에 썼듯 우리는 ‘분명 있는데, 없다는 느낌이 드는. 입을 가리고, 코를 가리고. 세상에서 내가 보이지 않을 만큼만 간단한 자살을 하는’ 마스크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아 그래서 A와 틴더남은 어떻게 됐냐고? 새 출발에 대한 친구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A는 결국 전 남자친구를 슬금슬금 다시 만난다.
경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누군가와 한껏 친밀하게 온기를 주고받는 일. 그 선을 넘어서는 것에서부터 관계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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