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뒤늦게 알고 박범계에 경고"..靑 '신현수 사의' 해명
청와대가 17일 "신현수 민정수석이 여러차례 사의를 표명했다"고 인정했다. 검찰 고위직 인사안을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신 수석을 '패싱'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실상 직보한 것이 사의 표명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파악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 7일 발표된 인사 과정에서 법무부와 검찰의 견해가 달랐고,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민정수석이 사의를 몇차례 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무부와 검찰이 원하는 인사 방향이 달라 민정수석이 중재하려고 했는데 중재가 진행되던 중 인사 발표가 돼 버리면서 신 수석이 사의를 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 2일과 5일 만나 검찰 인사방안을 논의했다. 윤 총장은 ‘추미애 라인’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자신에 대한 징계에 앞장섰던 대검 부장들의 교체를 요구했다. 그러나 박 장관이 이를 거부했고, 이견을 조율하던 신 수석을 건너뛰고 일요일인 7일 인사를 발표했다.
청와대는 “박 장관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절차가 의지대로 진행됐고, (인사 발표 전) 대통령의 재가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재가 과정에 대해선 “의사결정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 관련 내용에 정통한 여권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박 장관이 신 수석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인사안은 민정수석실을 통해 제청한다'는 청와대의 업무 프로세스까지 어기면서 문 대통령에게 재가를 사실상 직접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인사안을 보고했거나,또는 신 수석에게 지극히 형식적인 제청안만을 보낸 뒤 중요한 내용은 문 대통령에게 따로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박 장관의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이미 수석실과의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제청안을 즉각 재가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를 알게된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하자 문 대통령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제청이 보고됐다는 점을 뒤늦게 인식하게 됐고, 신 수석의 사퇴를 만류하며 박 장관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여권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을 1년 넘게 목격해온 문 대통령이 조율 여부를 모르고 인사안을 재가했다"는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어쨋든 이런 과정을 거쳐 사의를 굳힌 신 수석은 주변에도 “자존심이 상해 못 살겠다”, “더는 수석직을 못 하겠다”고 말했고, 지금도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그의 지인은 중앙일보에 "신 수석은 박 장관의 일방적 제청에 대해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제청까지 미룰 권한이 민정수석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박 장관이 정상적인 제청 절차를 거쳤다면 신 수석이 이를 끝까지 막았을 것이란 의미다.
문 대통령의 거듭된 사의 반려에도 신 수석이 사의를 접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해 여권에선 "단순히 박 장관의 인사 패싱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 또 여당 내 검찰개혁론에 힘을 싣는 문 대통령에 대한 불만으로 신 수석이 사퇴를 결심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 수석은 문재인 정부 최초의 검찰 출신 민정수석이다. 학자 출신의 조국, 감사원 출신인 김조원ㆍ김종호 전임 민정수석들이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 몰았던 걸 감안하면 결이 다른 인사였다. 그래서 그의 기용에 대해 " ‘조국 사태’, ‘추ㆍ윤 갈등’ 등 1년 넘게 이어져온 검찰과의 갈등을 끝내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의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과도 친분이 깊은 그를 민정수석에 기용한 직후인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은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국민을 염려시키는 갈등은 다시 없으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 수석은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검찰과의 갈등 중재 역할에 집중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그러나 지난 4일 검찰이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청와대의 기류가 급변했다"며 "검찰인사 역시 이를 계기로 강경기조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민주당 역시 검찰과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빼앗는 시도가 '검찰개혁 시즌2'라는 이름으로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신 수석과 만났다는 정치권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신 수석이 민주당의 소위 '검찰개혁 시즌2' 구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더라"며 "표정도 매우 좋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법무부와 검찰간 갈등 해소'라는 자신의 역할에 한계가 드러나고, 여권의 검찰 때리기에 무력함을 느끼면서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권내부의 갈등 구조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신 수석의 사표 수리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청와대가 신 수석의 사의 표명 사실을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은 박 장관에 대한 사실상의 경고로 볼 수 있다"며 "이는 신 수석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사의를 철회하게 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는 이유로 신 수석을 경질한다면 검찰과의 전면전을 재차 선포하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이어 법무장관과 청와대 수석의 갈등 조정에까지 실패할 경우 임기 말기에 접어든 문 대통령이 급격하게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편 박 장관이 신 수석을 배제하고 그의 하급자인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직접 인사안을 논의하면서 신 수석과 이 비서관이 갈등을 빚었다는 언론 보도에 청와대는 펄쩍 뛰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에 대한)신 수석과 이 비서관의 의견이 같았다. 나의 명예를 걸고 (갈등설은)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국 전 장관과 가까운 이 비서관과 신 수석의 갈등이 확대될 경우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권에선 “검찰과의 갈등을 수습하려던 신 수석과 달리 이 비서관은 검찰을 개혁에 반발하는 사실상의 적(敵)으로 규정해왔던 것으로 안다”,“박 장관이 처음부터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측근인 이 비서관과 소통하며 제청 과정을 진행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계속 번지고 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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