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해결 없이 가해자 복귀? 아이들 학습효과 짧을 것"

박정훈 2021. 2. 17. 18: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팟인터뷰]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박정훈 기자]

 
 학교폭력ㆍ학대ㆍ왕따
ⓒ 연합뉴스
최근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을 상대로 한 학교폭력 고발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가해 사실이 드러나면 활동을 중단하거나 팀이나 협회에서 무기한 활동 정지까지 받아 선수 생명까지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어느 때보다 학교폭력에 대한 공분이 커진 상황이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 폭력이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학교 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과 문제의식을 구조적 변화로 이어나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인권운동가로서 23년 동안 교육 운동을 통해 학생 인권 개선에 힘써온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는 17일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사회가 폭력에 대한 일관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비단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성폭력, 아동학대, 동물학대에 대해 사회가 어떠한 입장을 갖고 해결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학생들이 '반폭력'의 가능성을 학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 학교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학교 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진 상황을 증명하는 일들이다. 피해자들의 말하기가 사회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말할 때는 전제가 있다. 이것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으며, 내가 말하면 사회가 반응하고 어느정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나의 피해가 개인적인 피해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야 '사회적 말하기'가 시작될 수 있다. 

지금 사회가 이들의 고발을 잘 들을 필요가 있다. 개인에 대한 응징이나 단발마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피해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 구조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일련의 고발 사건들이 실제로 학교 폭력을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학폭 고발 사건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학습 효과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수 있다. '잠재적 피해자'들이 같은 일을 겪더라도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사회적 신뢰'가 생겨난다면 학교 폭력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특히 스포츠나 방송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경우 자신이 어떤 특정 분야의 재주를 잘 갈고 닦기만 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어떤 관계를 형성해왔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는지도 중요하다는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반짝'으로 그치고, 가해자들이 활동을 중단했다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복귀하는 일이 이어질 경우 학습효과가 오래가진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폭력을 줄이는 계기가 된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 당장 즉각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은 사회적 명망과 명예를 갖고 있다. 여론의 압력이 즉각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학교 폭력의 경우에는 폭력 가해자가 사회적 명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유명인들에 대한 학폭 고발이 이어지는 것을 학생들이 목격한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라, 이에 관한 지속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겨울철 인기 실내 스포츠 입지를 굳혀가던 한국 프로배구 V리그가 '학교 폭력(학폭) 논란'으로 휘청이고 있다.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의혹이 불거진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둘은 현재 팀 숙소를 떠난 상태다.사진은 지난 2020년 10월 경기에 출전한 이재영과 이다영(왼쪽).
ⓒ 연합뉴스
 
- 스포츠계에서 유독 학교 폭력 논란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꽤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고 고발이 되어왔다. 엘리트만을 육성하는 방식의 폭력적인 훈련, 합숙문화, 모욕과 폭력에 기반해서 기량을 향상시키는 훈련 방식이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신고센터가 만들어지고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지만 문화 자체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감독이나 코치가 선후배 위계질서를 선수들에 대한 통제전략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다. 1학년이 못하면 2학년을 혼내고, 2학년이 못하면 3학년을 혼내는 방식을 취하면서 단체기합도 빈번이 일어나고,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기 어려운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단체기합이 있는 환경이라면, 팀 간 대항전이 이뤄지는 종목에서 한 사람이 잘못할 경우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군대와 비슷한 이러한 훈련 환경의 문제들은 계속 지적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사회 이슈에서 '반폭력'의 가능성 학습한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 배경내 제공
- 분명 체벌도 없어졌고 학생인권조례가 생기는 등 과거보다 교실은 민주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폭력이 여전한 이유는 무엇을까?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또는 교사에 의한 차별이나 폭력 근절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직접적으로 학교 폭력 예방의 대안이라고 볼 순 없다. 그러나 학생 간의 폭력이 자주 일어나는 학교들을 보면, 학교가 학생들을 대하는 데 폭력적이거나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가 먼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관계 맺는 법을 보여주자는 게 학생인권조례의 취지다.

현재는 학교폭력 예방법이 있고 그에 따라 예방교육이 이뤄지긴 하지만, 교육 자체가 '학교 폭력을 저지르면 어떤 처벌을 받는다'식의 위협에 그치고 있다.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고, 인권 감수성을 길러주는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안에서 폭력이라는 것이 아무한테나, 무작위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폭력을 가해도 안전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고, 그것이 일종의 징벌성을 갖기도 한다. '쟤가 문제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거야, 쟤는 맞아도 되는 거야' 식으로. 이 부분의 작동 구조를 교육이 건드려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약자를 지목하는 방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차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학교폭력 예방과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에 문제가 된 스포츠 선수에 대해서는 기술과 기능만을 익히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선수인 동시에 한 명의 시민임을 자각하게 하는 인권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동료시민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갈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학교 폭력을 장기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최근 학교 폭력 문제의 또다른 쟁점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폭력이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학교폭력 예방법'에 의한 법적인 규제가 계속 이어지고 폭력에 대해선 공식적인 해결 절차를 밟아나가려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폭력이 은밀하거나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해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교 폭력은 교사들이 감지할 수 있지만, 공간이 이동하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 예방하고 자정하는 문화를 만들도록 돕는 수밖에 없다. 사이버 공간이 가지는 특성, 전파가 굉장히 빠르고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는다는 문제들이 있고, 이러한 특성에 대해서 학생들도 이해해야 한다.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나는 소위 '저격 사진', '저격 글'에 대해서 학생들이 숙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교육이 좀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 학교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연예계나 스포츠 스타들의 학교 폭력 사건에만 관심있는 게 아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청소년은 어떻게 시민이 되는가'라는 연구조사를 하면서 청소년들 인터뷰를 많이했다. 그런데 이들은 학교 폭력 고발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성폭력 사건, 동물학대 사건, 아동학대, 기후위기, 정치가 청소년을 대하는 방식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런 이슈들과 학교 폭력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 우리 사회는 묻지 않는다. 사실 학생들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통해 '반폭력'의 가능성을 학습하는 데 말이다. 교육이라는 게 학교 수업 통해서만 이뤄지는 게 절대 아니고, 폭력 행위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에서 배우는 경우가 많다.

동물학대, 성폭력, 학교 폭력 등등이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의 연결성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학교가 고민하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