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재판' 하나같이 양부모의 안일함 지적한 증인들(종합)

유병돈 2021. 2. 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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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2차 공판..오전 10시, 오후 2시, 4시 세차례 나눠 진행
어린이집 원장·담임교사·홀트 사회복지사 등 3명 법정서 증언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리는 17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양부모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일반적인 부모라면 안 그랬을 텐데,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어요"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가 입양 초기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를 받아왔다는 증언이 잇따라 제기됐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면서 법정에서는 양모 장모씨가 아이를 무책임하게 장기간 방치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신혁재)는 오는 17일 오전 10시부터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를 받는 양모 장모씨와 양부 안모씨에 대한 2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와 오후 2시, 4시 등 총 3차례로 나눠서 진행됐다.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과 홀트아동복지회 사회복지사, 어린이집 담임교사가 순서대로 증인으로 출석했다.

어린이집 원장 "정인이 입양 초부터 곳곳에 멍·상처…아프리카 기아처럼 야위어"

오전 10시 처음으로 증인으로 나선 어린이집 원장 A씨는 "정인이가 어린이집에 온 2020년 3월부터 신체 곳곳에서 상처가 발견됐다"고 진술했다.

그는 "처음 입학할 당시만 해도 정인이는 쾌활하고 밝은 아이였다"며 "건강 문제도 없이 연령대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입학 이후 정인이의 얼굴과 팔 등에서 멍이나 긁힌 상처 등이 계속 발견됐다"며 "허벅지와 배에 크게 멍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A씨는 상처의 원인을 물으면 장씨가 대부분 잘 모르겠다며 답을 피했고, 허벅지에 난 멍에 대해서는 '베이비 마사지를 하다 멍이 들었다'는 해명을 했다고 전했다. 친딸인 언니와 달리 정인이는 7월 말부터 약 두 달간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았는데, 장씨는 정인이가 어린이집에 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 증인에게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A씨는 "두 달 만에 어린이집에 다시 나온 정인이는 몰라보게 변해있었다"며 "아프리카 기아처럼 야위어 있었고 제대로 설 수 없을 정도로 다리도 심하게 떨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의 건강이 염려돼 병원에 데려갔고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학대 신고를 했다"며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정인이는 가정에서 분리 조치 되지 않았고, 오히려 말도 없이 병원에 데려갔다며 양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사망 전날인 2020년 10월 12일 어린이집을 찾은 정인이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고 한다. 폐쇄회로(CC)TV 영상에 담긴 정인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해 있었다. 활발하게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정인이는 교사의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었다.

A씨는 "그날 정인이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며 "좋아하는 과자나 장난감을 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인이의 몸은 말랐는데 유독 배만 볼록 나와 있었고, 머리에는 빨간 멍이 든 상처가 있었다"며 "이유식을 줘도 전혀 먹지 못하고 전부 뱉어냈다"고 진술했다.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리는 17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양부모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홀트 사회복지사 "입양모, 일반적 엄마들과 달리 무책임해 보여"

홀트아동복지회 사회복지사 B씨는 지난해 9월 장씨로부터 아이가 일주일째 밥을 먹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한 끼만 밥을 못 먹어도 응급실에 데려가는 게 일반적인 부모인데 장씨는 달랐다"며 "'불쌍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불쌍하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일주일 넘게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B씨는 "자기자식처럼 키우겠다고 한 사람이 왜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려는지 이해가 안 됐다"면서 "보통 엄마들은 애가 하루만 밥을 먹지 못해도 늦은 밤에라도 병원 데려가 응급진료 받았을텐데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양모에게 기관 차원에서 아이를 확인해야 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고 난 후 장씨의 말투도 바뀌고 연락도 잘 안 되었다"며 "이후 거의 양부를 통해 논의했고, 추석 이후인 10월 15일 가정방문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고 말했다. 정인이는 등 쪽에 가해진 강한 충격으로 방문 이틀 전인 13일 사망했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아 사후관리를 전담했던 B씨는 정인이와 관련해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던 5월 이후 다른 입양아들에 비해 훨씬 많은 연락을 취했다고도 진술했다.

또 B씨는 장씨가 병원에 가는 걸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고 했다. 검사가 "장씨가 선뜻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느냐"고 묻자 B씨는 "병원에 데려 가는 걸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답했다.

이날 검찰과 변호인 측은 정인이에게서 발견된 멍자국에 대해서도 논쟁을 펼쳤다. 장씨 측 변호인이 B씨에게 "평소 아이에게 몽고반점이 많았느냐"고 묻자, 검찰은 "멍과 몽고반점은 쉽게 구별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대 신문을 했다.

이에 대해 B씨는 "몽고반점은 파란색인데 내가 봤던 것은 멍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인이 담임교사 "남들보다 발달 빨랐던 아이, 2개월 만에 몰라보게 변해"

어린이집 담임 교사 C씨도 "2개월 만에 어린이집에 나온 아이가 너무 마르고, 피부가 까맣게 변해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말랐는데 배만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며 "어린 아이들은 가스가 차면 아랫배에 차는데 정인이는 윗배가 더 둥글고 빵빵하게 튀어나온 상태였고, 눌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C씨는 "2개월 전까지만 해도 정인이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잘 웃고 활동적인 아이였다"면서 "2개월 만에 다시 등원한 정인이는 멍하니 앉아만 있고, 뭘 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망 하루 전인 지난해 10월 12일 정인이의 상태가 더욱 나빠졌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C씨는 "저 때 정인이를 안고 있었는데 숨만 (겨우) 쉬는 아이 같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C씨는 "하루종일 정인이가 숨은 쉬는지 불안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며 "그 때 부모 의견을 무시하고 병원을 데려갔으면 (정인이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고 울먹였다.

장씨는 7월 중순부터 약 2개월간 가족 휴가와 코로나19 상황 등을 이유로 정인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 첫째는 등원하는데 동생은 안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냐"는 검사의 질문에 C씨는 "의심스러운 상황이라 다른 교사들과 얘기를 나눴다"면서 "구체적으로 묻기가 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C씨는 양모 장씨가 정인이를 대하는 태도가 일반 부모들과는 달랐다고도 진술했다. 그는 "보통 정인이 또래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 양육자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다른 부모들과 달리 장씨는 정인이를 안아준다거나 그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C씨는 "정인이의 몸에 난 상처에 대해서도 안일하게 '괜찮다'는 식으로만 말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부모로써 아이에게 관심이 적고, 특히 둘째인 정인이를 치밀하게 살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답했다.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리는 17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양부모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양부도 살인공범, 구속해야" 다시 모인 시민들, 양부는 신변보호 요청

이날 오전 8시께에도 시민들은 엄벌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법원 앞을 가득 메웠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약 20여명은 파란색 우비를 입고 '정인이를 죽인 부부살인단, 사형이 마땅하다'는 내용이 문구가 적힌 팻말 등을 들었다. '입양부 사형', '정인이 양부 살인공범 구속'이라고 쓰인 노란색 패치도 옷에 붙였다. 현장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인아 미안해' 등의 글귀를 적은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시민들의 분노를 의식한 듯 양부 안씨는 이날도 일찍 법원에 출석했다. 안씨는 법원 정문 쪽에 모인 시민들을 피해 오전 9시께 법정 경위 4명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후문을 통해 법원청사로 들어갔다.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재판이 끝난 뒤 안씨는 자신의 차량으로, 양모는 호송차량으로 현장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안씨를 기다리던 시위대가 안씨가 탄 차량을 막아서고 발길질하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 안씨는 시민들과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황급히 차량을 향해 뛰었다.

그러자 수십명의 시민들은 차량을 막아선 채 "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소리치며 차량을 양옆으로 흔들어 댔다. 경찰의 제지와 사이렌 소리에도 시민들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경찰과 법원 직원들이 차량 길을 터주고서야 안씨는 법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달 3일로 예정된 3차 공판에서도 3명의 증인이 출석할 예정인 가운데,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 법원에서도 1인 시위를 진행한다"며 "다음 달 3일로 예정된 3차 공판에도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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