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레이 오프 중인 디즈니.. 그중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박정우 2021. 2. 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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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 김미란씨에게 들은 코로나 이후의 변화

[박정우 기자]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의 여파는 세상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어떤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또 어떤 산업은 예상외의 큰 타격을 입었다. 가장 심각한 지경에 처한 것은 아마도 영화 쪽이 아닐까 싶은데, 이것은 비단 한국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초국적 거대 기업인 디즈니도 코로나의 직격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대규모 해고가 단행되었고, 기대를 모았던 뮬란은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디즈니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한국 상륙 소식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픽사의 영화 <소울>은 역주행 열풍이 뜨겁다.

지난 6일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의 김미란 작가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김미란 작가는 한국에서 생물학과를 졸업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칼 아츠 캐릭터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하고, 워너브라더스를 거쳐, 현재 한국인 최초의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녀와는 지난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 아티스트로서의 삶, 디즈니라는 회사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관련 기사 : 한국인 최초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의 반전 과거).

그가 여전히 현직에 있는 만큼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는 '현재'의 디즈니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소식을 들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한 디즈니의 변화된 시스템과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 나누었다.  

레이 오프와 재택근무,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 

- 최근 코로나로 인해서 디즈니도 대규모 해고 사태가 있었습니다. 작가님 팀에도 변화가 좀 있었을까요?

"해고라고 보다 레이 오프(lay off, 기업이 경영 부진이나 대규모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나중에 재고용할 것을 약속하고 종업원을 일시적으로 해고하는 일)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디즈니 출판, 게임, 제가 속한 이매지니어링 등등의 분야에서만 대략 2만8000명 정도를 레이 오프 했고, 앞으로 3만8000명 정도 규모를 더 레이 오프 한다고 합니다. 아마 디즈니 전체로 따지만 훨씬 더 될 거예요. 사실 미국에서는 고용에 관한 것이 굉장히 유연한 편이에요. 1년에도 수시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이번에는 그 사이즈가 워낙 컸던 거죠.

그래서 저희도 인원이 줄고 팀이 합쳐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원래 디즈니 같은 대기업에서는 자기 일만 잘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캐릭터 디자이너인데 잉킹도 할 줄 아네? 3D도 다룰 줄 알고, 마야도 능숙하네?' 이런 사람이 살아남는 거죠. 담당 캐릭터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미키, 미니 담당자라고 해서 미키와 미니만 그릴 줄 알면 못 살아남습니다. 공주도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캐릭터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바닥에 들어오는 것도 힘들지만 살아남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 현직에 있는 입장에서 불안감 같은 게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솔직히 그런 건 없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요. 워너에서 일할 때부터 대기업은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레이 오프를 하고 싶으면 한다는 것, 또 절대 대체되지 못하는 존재는 없다는 걸 늘 봐왔어요. 게다가 책에서도 썼듯이 디즈니는 저의 꿈이었고, 명예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건 그림이지 어떤 특정한 회사는 아니니까요.

만약 디즈니를 나가야 한다면 또 다른 회사를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어요. 마음 같아선 그냥 내 작업을 하는 작가로 살고 싶기도 합니다. 올해가 캐릭터 아티스트로 일한 지 26년째인데 그중에 절반 정도는 늘 내일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 시절처럼 열심히 뛰면 뭐 어떤 길이든 열리지 않겠어요? 나이를 먹긴 했지만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니까요."
 
 김미란 아티스트가 디즈니 행사에서 그린 미니마우스
ⓒ 디즈니
 
- 요즘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업무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일단 미니 마우스는 주로 제가 그리고요, 전 세계로 나가는 미키 마우스 제품을 검수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라이센싱 관련해 입체나 조각들도 확인하고, 잘못된 그림이 있으면 오버레이도 하고 있고요. 요즘은 공주도 많이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공주 그림이 일이 많고 노동력이 정말 많이 듭니다.

제가 맡고 있는 주요 캐릭터가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라면 제 직속 상사가 공주 캐릭터를 맡고 있는데요, 사람이 줄고 일이 많다 보니 거의 매일 새벽 2시까지 일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상사가 늦게까지 일해도 눈치 보거나 하는 게 전혀 없습니다. 상사 입장에선 도와달라고 요청은 할 수 있지만 아래 직원이 워라벨 얘기를 하면 강요할 수 없어요.

근데 또 저는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상사가 혼자 2시, 3시까지 일하는 걸 보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서포트를 좀 해야겠다 싶어서 할 수 있는 선에서 거의 매일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엔 정말 바빴어요."
 
 김미란 작가와 제프 이후의 새 직속상사 도로타
ⓒ 박정우
 
- 코로나로 인해서 근무 환경이나 시스템에 대한 변화도 있을까요?

"디즈니 특성상 스튜디오는 보안이 굉장히 철저해서 직원이라도 담당 애니메이터가 아니면 영화 스튜디오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저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안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에요. 안에서 그린 것은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는 나름의 룰도 있고요. 그런데 한 날은 회사에 갔더니 전부 짐 싸서 집으로 가래요. 컴퓨터도 가지고. 컴퓨터를 가지고 간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계속 '이거 조크지?' 이랬다니까요. 그런데 조크가 아니었습니다. (웃음)

그때부터 계속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요. 나름 시스템도 갖춰져 있는데요, 저희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카카오톡처럼 서로 대화도 나누고, 파일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전화도 가능해요. 그 외에도 줌을 통해 화상 회의도 커버되고, 재택에 맞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출퇴근 시간 같은 것이 많이 절약되잖아요. 그렇게 세이브된 시간은 다시 일로 돌아간다는 걸 회사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동안 디즈니는 구글 같은 회사처럼 재택근무가 일반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나쁘지가 않은 거지요. 직원들 만족도도 높고, 업무 효율도 올라가고. 현재로서는 올해까지만 이런 시스템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회사에서도 다각도로 검토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디즈니 플러스, 전형성 벗어난 캐릭터... 새로운 도전들

- 최근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영상 구독 서비스)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한국에도 진출한다고 하고. 관련해서 하는 일이 있을까요? 알고 있는 배경이 있으면 그것도 말씀해 주세요.

"디즈니 플러스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 팀의 비즈니스는 아니에요. 영화, 디즈니 플러스, 인터넷 동영상 등이 힘을 모아주면 그때 우리의 비즈니스가 생성되는 방식이니까요.

디즈니 플러스에 집중하게 된 배경이 좀 재미있는데, 처음 <뮬란>을 찍고 나서 코로나가 터져서 개봉을 못 했어요. 몇 번 연기하다가 그렇다고 개봉을 안 할 수는 없으니 디즈니 플러스로 해보자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엔 해본 적이 없었으니 될까? 하는 말들이 좀 있었죠.

반신반의하면서 디즈니 플러스로 개봉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네요? (웃음) 개봉 당시 앱 다운로드 건수가 68% 이상 늘었다는 통계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이거 괜찮은데?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하자' 이렇게 된 겁니다."
 
 김미란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 그리는 과정을 촬영해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 되었다.
ⓒ 디즈니
 
 위그림 촬영 현장 사진
ⓒ 디즈니
  
- 최근에는 <소울>이 한국에서 굉장히 화제입니다. 관련해서 하신 일이 있나요?

"<소울> 관련해서 스타일 가이드를 하나 만들긴 했습니다. 이건 제가 한 건 아니고 우리 팀의 후배가 담당이었어요. 보통 이런 무비가 나오면 저희 팀에선 스타일 가이드를 하나 정도 만듭니다. 그런데 만약 그 무비나 캐릭터가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고 계속 인기가 있으면 시즌별로 새로운 스타일 가이드를 만들고요. 이렇게 10년, 20년 계속 스타일 가이드를 만드는 걸 '에버그린'이라고 불러요. 미키와 미니를 비롯한 공주 캐릭터들이 대표적인 에버그린이죠. 픽사에는 토이 스토리, 카 정도고."

- <겨울왕국>도 에버그린에 속하겠군요.

"아이고, <겨울왕국>... 말도 마십시오. 저희가 아직까지 <겨울왕국>에 치여 삽니다. (웃음) <겨울왕국>은 정말 언터처블이라니까요!"

- 최근 디즈니가 새 공주 캐릭터를 공개했습니다. 디즈니가 그동안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는데 '라야'는 이전과는 또 다른 캐릭터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지금의 디즈니는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적 요소를 없애고 있고, 성별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이나 행동이 전형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려 한다고 할 수 있어요. '라야'는 이런 디즈니의 방향성이 잘 드러난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다만 저희의 역할은 '프로덕트'를 파는 것인 만큼 필름 메이커들이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내면 아무래도 이걸 어떻게 더 매력 있는 캐릭터로 포장해서 팔 수 있을까? 하는 관점으로 고민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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