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된 향나무 128그루 잘렸다..허락없이 톱질한 대전시

김방현 2021. 2. 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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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 80년된 향나무 128주.."원상복구 하라"


“대전시, 문화재 지키는 나무 무단 절단”
대전시가 옛 충남도청에 심어진 향나무 120여 그루를 무단 절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향나무 소유권을 가진 충남도는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며 원상 복구를 요구하고 있어 갈등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대전시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울타리에 심어있던 향나무. 대전시는 이 향나무 128그루를 잘라냈다. [사진 독자]


17일 대전시와 충남도 등에 따르면 대전시는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자리에 2019년부터 '지역 거점별 소통협력 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해왔다. 2023년까지 옛 충남도청 의회동·부속 건물을 리모델링해 회의·전시 공간, 카페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국비 57억원을 포함해 120억원이다. 이 가운데 60억원 정도는 프로그램 운영비다. 이 사업은 2018년 12월 행정안전부가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한 사업이다.

대전시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곳 담장 103m를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담장 안에 심어놓은 향나무 128주를 베어내고 44그루는 옮겨 심었다. 나무를 베어낸 시기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 말까지이다. 향나무는 수령(樹齡)은 70~80년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보호 가치가 없는 향나무는 베어내고 44그루는 다른 곳에 옮겨 심어 가꾸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전문기관에 의뢰해 경관성과 기능성·경제성 등을 고려해 이식과 폐기 대상을 정했다고 했다.

대전시가 베어낸 옛 충남도청 주변 향나무. [사진 독자]

문제는 대전시가 이 과정에서 옛 도청 건물 소유권이 있는 충남도 등과 제대로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대전시가 지난해 6월 ‘소통협력 공간을 조성사업을 위해 향나무를 제거해야 하니 승인해달라’는 요청을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충남도와 문화재청 "원상복구하라"
이에 충남도는 "도청 건물 소유권이 올해 상반기 중에 문화체육부로 넘어가니 그때 문화체육부과 협의하라”고 대전시에 통보했다고 한다. 이후 대전시는 충남도에 업무협조 요청은 하지 않았다. 충남도 측은 “향나무가 베어진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며 “지난 15일 자로 대전시에 원상복구 요청을 했다”고 했다.

충남도청 건물 소유권을 충남도에서 넘겨받는 문체부도 향나무가 잘려나간 것을 뒤늦게 알고 지난 5일 원상 복구 명령을 내렸다. 앞서 대전시는 나무를 다 베어낸 뒤인 지난해 12월 문체부를 방문해 '구 충남도청사 담장의 안전성이 우려된다'며 관련 공사 협의를 요청했다.

대전시가 베어낸 향나무 가운데 상당수는 1930년대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심은 것이다. 옛 충남도청 건물은 200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베어낸 향나무가 문화재는 아니지만 도청 건물 경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향나무, 2006년 시위대에 불타기도

옛 충남도청에 조성된 경관조명. 건물 주변에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중앙포토

옛 충남도청 향나무는 2006년 민주노총·민주노동당·농민 등 시위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며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불에 타기도 했다. 당시 시위대는 도청 정문 좌우로 100m의 담장에 심겨 있는 향나무와 회양목 등 220그루에 불을 질러 모두 태웠다. 울타리 구조물인 벽돌과 철근도 모두 뜯겼다. 당시 대전지법은 시위대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고, 충남도는 일부 향나무를 사 다시 심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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