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선별지급'이 아니라 '선별제외'를 하자
[이상민 기자]
▲ 지난 1월 7일 오후 전국카페사장연합회 소속 업주가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한 카페의 메뉴판에 실내 영업 제한 조치로 생존권 위협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포스터를 전자메뉴판에 띄워져 있다. |
ⓒ 이희훈 |
'엄마가 좋은가 아빠가 좋은가'만큼이나 답이 없는 질문이다. 정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사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보편지원도 보편지원 나름이고 선별지원도 선별지원 나름이다. 엄마도 엄마 나름이고 아빠도 아빠 나름인 것과도 같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보편지원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고, 선별지원을 한다고 코로나19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별지원이라면 어떤 식으로 선별을 할지가 진짜 문제다. 마찬가지로 보편지원이라면 현재 우리나라 재정 여력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합당한 규모의 보편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정된 질문 안에서만 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재난지원금이라는 네이밍에 숨겨진 의도
최근 여당과 정부가 코로나19 피해지원을 선별적으로 하기로 잠정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담이지만 제발 4차 재난지원금이라는 용어는 쓰지 말자. 지난해 1차 추가경정예산안에도 소상공인·수급권자·아동수당 수령자 등에게 현금성 지원금이 포함됐다. 그런데 이를 1차 재난지원금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2차 추경을 통해 비로소 코로나19 피해 여부와 상관없이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다. 2차 추경을 통한 지원이야말로 재난지원금이란 새로운 이름에 맞는 새로운 정책이다. 코로나19 피해자만 선별해서 지급했던 이후의 '피해지원 대책'과는 정책의 타깃과 목적이 다르다. 과거는 물론 작년 1차 추경에도 있었던 피해지원 대책을 새로운 정책인 양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순간, 대단히 새로운 정책에 따라 엄청난 지원금이 뿌려진다는 이미지를 만든다.
이런 잘못된 용어가 지속적으로 쓰이는 것은 여야 정치권과 언론의 책임이다. 재정사업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필요한 여권과 포퓰리즘식의 지나친 현금성 지원으로 재정여력이 감소한다는 이미지가 필요한 야권이 동시에 바라는 네이밍이 '재난지원금'이다. 여야가 항상 싸우고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재난지원금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피해지원 대책을 왜곡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일하다.
정부의 공식 용어 그대로 '피해지원 대책'으로 표현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합당하다. 정명(正名)론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잘못된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실체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설정된 네이밍 밖에서 실체를 파악해 보자.
▲ 음식점,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정부의 영업시간 제한에 항의하며 형평성 있고 합리적인 방역기준 수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
ⓒ 유성호 |
현재 선별 논쟁의 쟁점은 매출액 4억원이 넘는 자영업자 지원 여부다. 코로나 이전보다 소득이 감소했다고 매출액이 4억원을 넘는 자영업자까지 피해지원금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잘못된 것은 이런 논쟁 자체다. 매출액은 4억원이 아니라 10억원이 넘어도 순이익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고정비용이 있어서 매출액이 코로나 이전보다 10% 감소한 4억원이 되어도 순이익은 100% 이상 감소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종업원이 10명 넘는 사업자에도 피해지원금을 줄지 말지도 불필요한 논쟁이다. 종업원이 20명이어도 코로나19로 인해 큰 폭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손실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부의 방역방침에 따라 일정 부분 피해를 보았다면 피해보상금을 어느 정도 주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이렇게 선별의 방식을 하나씩 추가할수록 오히려 루프홀(정책의 소외현상)도 추가되기 마련이다. 정책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할수록 좋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재난 지원이 아니라 영업정지로 인한 보상을 하라는 주장도 있다. 보상이 맞을까 피해지원이 맞을까? 제3의 시각도 있다. 영업정지라는 정부의 업무를 수행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정부의 방침에 따른 영업정지 피해는 한 달에 1억원일 수도 있고, 10만원일 수도 있다. 그 손실 금액을 비례적으로 채워주어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그럼 영업정지라는 업무 수행 비용을 지급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국가가 시민에게 영업정지라는 업무를 강제했으면, 피해 여부를 떠나서 그 수행 비용을 지급하는 것은 나름 합리적이다.
결국, 코로나19 피해자와 정부의 방역방침에 성실하게 따른 분을 어떻게 선별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사실 제대로 선별할 수 있는 수단만 있다면, 선별지원은 논리적으로 보편지원보다 우월한 수단이다. 다만, 정확히 선별할 수 있는 방법론이 부재하기 때문에 보편지원이 힘을 얻고 있다. 선별지원의 정의상 선별되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업자등록증도 없이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기타소득자가 코로나19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발굴해서 지원해줄 수 있을까?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마찬가지로 자영업자 부가가치세 확정신고자료도 국세청에 존재한다. 부가가치 자료는 매출액보다는 이익을 추정하기에 더 좋은 자료다. 아주 높은 수준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종합소득자만 빼고 종합소득을 신고하는 분들은 상당 부분 피해지원금을 받아도 될 것 같다. 이는 기타소득자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세청에 2020년 원천징수 금액 결과를 통해 아주 높은 금액의 기타소득자 일부만 선별해서 제외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원할 사람을 선별하지 말고 지원받지 않을 사람만 선별해 나머지는 지원하자는 것이다. 2020년 국세 신고 결과 자료라는 빅데이터를 빼고 선별 지원 방식을 논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국세청이 보유한 납세자료는 국세청 상위기관인 기획재정부와 같은 정부 기관에도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 만약 제공하면 국세기본법 위반이 된다. 피해지원금이라는 아무리 좋은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에 예외를 두고 다른 정부 부처에 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 번 예외가 뚫리면 그 구멍은 점점 넓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 좋은 자료를 써먹을 방법이 없을까? 있다. 피해지원금을 받지 않을 선별 명단을 국세청이 만들고 국세청이 지급하면 된다. 세금환급금 형식이라면 국세청이 얼마든지 지급 할 수 있다.
피해 지원대책이 1차·2차·3차·4차로 이어질 때마다 선별 방식은 일관성 없게 일부는 달라지고 일부는 유지된다. 이 말은 받는 사람은 계속 받는 중복지원 문제와 소외되는 사람은 계속 소외되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했던 지난해 소득을 기반으로 선별하지 못하고 2019년 또는 2018년 소득자료를 통해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 피해자를 선별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업데이트된 소득 자료가 부재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핑계가 계속된다. 그러나 업데이트된 아주 좋은 2020년 소득 자료는 국세청에 존재한다. 이 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세청의 빅데이터
결국, 방안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 2020년 납세자료를 통해 피해지원금을 받지 않을 근로소득자 등을 선별한 이후 '나머지'는 누굴까? 제1안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도와 2020년도 원천징수 또는 세금 신고를 한 모든 납세자에게 '국세환급금'을 주는 소극적 대책이 있다. 제2안은 지원 배제된 사람이 포함되지 않은 전체 가구 대상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있다. 마지막 제3안은 선별된 사람을 제외한 전체 국민 대상으로 지급하는 적극적 대책이 있다.
이 세가지 안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는 알 수 없다. 이는 예산 제약 하에서 경제활동인구에 두텁게 주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비록 얇지만 넓게 지급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핵심은 2020년 국세자료를 이용해서 지원받지 않을 사람만 선별하자는 거다.
끝으로 개인적인 경험 두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논의될 때 현재와 마찬가지로 보편지급과 선별지급 두 가지가 뜨겁게 논의되었다. 그 이후로 거의 1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때의 논쟁보다 지금은 얼마나 발전된 자료를 통해 생산적인 논쟁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당시 나는 더 효율적이라며 선별지원의 손을 들면서, 다만 지급할 때 선별하지 말고 보편적으로 지급한 이후 소득에 따라 세금으로 환수하는 '보편지급-선별환수'의 구체적인 방식을 만들어서 제안한 바 있다.
당시 보편지원-선별환수를 강하게 주장한 이유는 피해지원 대책은 한 차례가 아니라 2차·3차·4차로 이어질 것 같은데 1차에 지원 받은 사람을 2차 또는 3차에 중복 지원을 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편지원-선별환수 시스템이라면 아무리 여러 번 보편적으로 지급되어도 나중에 (2021년도) 소득이 많은 분에게 지원된 금액은 대부분(초고소득층은 더 많이) 환수될 수 있기에 지원금 횟수가 많아질수록 유리한 제도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보편지원-선별환수 시스템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나 과거를 후회만 할 수는 없다.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선별지원'이 아니라 '선별제외'이지 않을까.
둘째, 개인적으로 주 수입은 글 쓰고 강의해서 받는 기타소득이다. 부수입은 태양광 발전 전기사업자로서의 사업소득이다. 그런데 태양광 발전량은 코로나19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업자 등록증이 있다는 이유로 한 번도 빠짐 없이 중복해서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강의소득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수입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기타소득자 등록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기타소득이 줄었다는 이유로 지원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식의 선별지원이 4차·5차 가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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