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세절, PC 포맷..공정위, 제강사 조사방해 형사 처벌한다
지난해 5월 14일 오전 10시 30분.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과 직원들이 제강사인 세아베스틸 서울 본사와 군산 공장에 들이닥쳤다. 철 스크랩(고철) 구매 담합 행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현장 조사였다. 절차대로 조사 개시 공문과 전산ㆍ비전산 자료 보존 요청서를 제시했다.
핵심 조사 대상자인 이 회사 군산공장 자재관리팀 임모 부장도 조사 사실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사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조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12시 20분쯤 사무실로 들어와 자신의 다이어리 1권과 업무수첩 1권을 문서 세단기로 파쇄했다. 고철 구매 관련 업무 서류는 별도 장소에 감췄다.
조사 방해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시 핵심 조사 대상자였던 서울 본사 구매팀장과 구매팀원은 다음날 오전 9시 30분쯤 전산 용역 업체를 불러 업무용 PC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하드디스크를 포맷(초기화)했다. 조사를 나간 공정위 직원들은 수첩은 물론 PC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공정위는 제강사의 담합 행위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세아베스틸 법인과 소속 직원 3명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17일 밝혔다.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2017년 개정한 뒤 처음 형사 처벌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또 해당 사건 조사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요구에 불응한 현대제철 전·현직 임원 3명에 대해서도 각각 200만원씩 과태료 600만원을 부과했다. 법에 따라 부과할 수 있는 최대 과태료다.
공정위는 기존에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해 과태료(법인 2억원 이하, 개인 5000만원 이하)만 부과해왔다. 전상훈 공정위 카르텔조사과장은 “현장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지는 조사 방해 행위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며 “공정거래 조사를 방해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제재해 조사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앞서 공정위는 현대제철ㆍ동국제강ㆍ대한제강ㆍ와이케이스틸ㆍ한국제강ㆍ한국철강ㆍ한국특수형강 등 7개 제강사의 고철 구매 기준가격 담합행위를 적발해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3000억8300만원을 부과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대 과징금이다. 공정위 역대로도 4번째 크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2세 김형석의 자녀교육법 “아이에겐 딱 이것만 주면 된다"
- 5만 달러 거제의 추락···"김영삼·문재인 대통령 배출한 우리 좀 살려주이소"
- 집값 10억원 오르는데 세금 16억원···'차원'이 다른 종부세 폭탄
- [단독] "문 대통령, 백운규 영장에 격노···그뒤 청와대·윤석열 인사조율 무산"
- “제2의 서태지? 과찬이자 부담···이승윤으로 남고 싶어요”
- 진중권 "우린 불법사찰 DNA 없다? 청와대의 해괴한 나르시시즘"
- '어대명' 별칭도 등장…이재명 1위 독주, 대세인가 고점인가
- [단독] "검찰 패야" 문 대통령과 외쳤던 김인회, 이젠 "경찰파쇼 걱정"
- [단독] 9년전 '노크 귀순' 그곳, 이번엔 '헤엄 귀순'에 뚫렸다
- 사흘치 쌓인 신문 눈여겨봤다…할머니 구한 英 신문배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