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병사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곳, 문수산성
경기도의 31개 도시 하나 하나를 새롭게 조명하고 여행의 매력을 새롭게 알아가보자 합니다. 김포를 시작으로 파주, 연천, 고양, 강화도, 시흥, 안산, 부천, 의정부, 양주 지역을 현재 취재 중입니다. <기자말>
[운민 기자]
▲ 문수산을 따라 뻗어있는 문수산성 날이 좋으면 북한의 개성땅 까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
ⓒ 운민 |
어느덧 건너편 산자락에서 돌로 된 성문이 우뚝 솟아 나를 맞아준다. 드디어 문수산성에 도착한 것이다. 문수산이라는 이름은 사실 흔하다. 아마 불교의 문수보살(文殊菩薩)에서 유래되었을 터인데 김포뿐만 아니라 내가 예전에 살던 울산에도 있고, 용인에도 문수산이란 지명이 있다고 하니 흔하디흔한 산 이름이지만 이 산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문수산성이란 성곽 때문이다.
국방을 중시한 조선 숙종에 의해 1694년에 지어졌으며, 특히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엄청난 격전지였다고 한다. 이때의 격전으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고, 성내가 크게 유린되었다. 지금은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섰으며,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성문은 남문으로 2002년에 복원이 완료된 복제품에 불과하지만, 상상으로만 여겨졌던 산성의 위용이 피부로 와 닿는다. 하지만 문수산성의 진면목을 알려면 문수산을 두 시간 반가량 등산해야 하기에 머뭇거림이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게 너무나 아쉬워 품속에 아껴둔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물며 첫발을 내디뎠다.
어렸을 땐 등산을 무척 싫어했었다. 힘들게 오르는 게 쓸데없는 고생을 자처하는 것만 같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산에는 모기와 벌, 파리 같은 벌레도 득실거리고 바닥은 돌이나 진흙으로 뒤덮여서 신발이 성할 수 없었다. 또, 기껏 힘들게 올라와서는 올라온 만큼 힘들게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 문수산 정상에 서있는 장대의 풍경 문수산 정상에 있는 장대에서 문수산성 전체를 총괄하는 지휘관이 지휘를 하기도 했었다 숱한 침입을 겪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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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 올라보니 어느새 시야를 가렸던 나무숲은 사라지고, 김포 땅과 강화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김포 땅이 생각보다 넓어서 그런지 아무리 신도시가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넓은 산과 들판이 남아있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김포만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북쪽 방향으로 고개를 드니 산 능선을 따라 나지막한 성벽이 정상을 향해 뻗어있어서 등산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큰 숨을 들이쉬고는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본다.
비록 376m의 낮은 산이지만 꽤 경사가 급하고 능선도 길어서 오르기가 수월치 않았지만 돌을 손에 메고 산에 올랐던 민초들을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내디뎌 본다. 성벽의 높이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하지만 천연 성벽인 이 산에 의지하여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이겨냈었고, 지금까지 굳건히 김포의 산하(山河)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벽과 나란히 걸으면서 조선시대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 당시의 장군과 병졸이 되어 적군을 맞이하는 상황을 맞이해보니, 병졸들의 이마, 손, 발에서 흘렸을 긴장과 땀, 장군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웠을 심정, 마을을 버리고 성벽으로 도망쳐 숨어 지내던 백성들의 두려움과 원망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어느덧 산 정상이 보이고, 둥그런 성벽으로 둘러싸인 장대(將臺)의 위용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장대(將臺)는 전시에 장군들의 지휘소로 사용되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강화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는 2척의 함정과 해전 육전대원들로 한성근과 지홍관이 150명의 병사들로 지키던 문수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3명의 전사자와 2명의 부상자만 남기고 철수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 해군의 손아귀에 넘어가자, 산 부근의 일부 성벽만 남고 해안가를 비롯한 성벽 시설물들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장대 위에 서서 북쪽을 바라다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북한 땅이 눈에 아른거린다. 저 앞에 보이는 개성 땅에는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가 남겨져 있을 것이다. 미완의 여로로 남기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산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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