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내도, 내 안의 고요한 섬
[홍기표 기자]
감정을 사진으로 박제하는 헛헛한 세상과 달리, 가슴속에 무언가를 담아 나오는 곳이었다. 지난 15일, 거제도 구조라에서 두 시간 간격으로 왕래하는 작은 배가 통통통 소리를 내며 '내도' 방파제에 닿았다.
▲ <내도> 방파제에서 바라본 모습. 동백나무가 풍성하다. |
ⓒ 홍기표 |
동백섬 내도의 풍경
방파제 바로 앞에는 책 몇십 권이 꽂혀 있는 쉼터가 있었다. 매점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동네 아지매가 운영하는 가게도 그 옆에 함께 붙어 있었다. 한눈에 다 들어오는 약 100여 미터 해안길에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뒤로 동백나무가 산을 풍성하게 뒤덮고 있었다.
거제도 내도는 해안선 길이가 3.9km에 산봉우리가 131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넉넉히 두세 시간이면 산 둘레에 놓인 길을 따라 천천히 감상하며 즐길 수 있다. 동백나무가 바다를 향해 고개를 뻗고 있고, 그 숲속에 들어가면 하늘 위로 뻗은 얇은 대나무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다.
한려해상에 자리 잡은 이 작은 섬은 면면마다 다양한 경관을 연출한다. 짧은 산행길 동안 발걸음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각각의 경치를 놓치기 아쉬워 수없이 멈췄다.
동백나무는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꽉 찬 꽃봉오리를 보니 섬은 이미 봄을 맞이할 준비가 끝나 보였다. 전날 비바람이 왔던지라 바닥에는 꽃잎이 아직 생생한 꽃봉오리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나는 잔잔한 여유를 즐겼다.
내도의 삶
내도에는 숙박시설이 두 군데가 있다. 그중 나는 '모퉁이 햇살'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속소에 머물렀다. 숙박시설 사장은 30대 초중반 정도로 젊었다. 고요와 평온보다는 열정과 도전이 어울리는 나이였다.
이곳에 머물게 된 사연를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그는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아버지가 태어난 이곳에 다시 내려와 부모님이 운영하던 숙박업을 함께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본섬(거제도)에서 배로 약 10분 거리지만 이 척박한 땅에서의 삶은 어지간한 뚝심으로는 힘들어 보였다.
현재 내도에는 1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2010년 기준으로 30여 명이었는데 절반 이상 줄었다. 주인 말에 따르면 2003년 태풍 매미 때 내도는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만들어진 작은 마을이 몽땅 부서진 것이었다.
육지 생활에 익숙한 나는 그날 그 밤의 악몽이 산등성이를 타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렸을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바다 가까이 자리 잡은 집들은 큰 폭풍 속에 갇혀 밤새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들은 폐허가 된 이곳에 집을 한두 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집들이 펜션이 되었고 그는 2년 전부터 숙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이곳이 입소문 나기 시작하면서 내도는 등산객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하룻밤 묵기 위해서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업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난 것 같았다. 드나드는 고깃배는 보이지 않았다. 본섬에서 출항한 배들만이 간간이 흰 물결을 그리며 섬 주변을 지나다녔다.
나는 이 작은 섬에 삶을 꾸린 사람들과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궁금했다. 하지만 내도는 섬 이름과 달리 그 속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았다. 기록된 섬의 역사는 찾기 힘들었다. 섬에서 섬으로 떨어져 나와 도시와 더 멀어진 그들의 시간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 <내도>에는 숙소가 두 군데 있다. 그중 한 군데에서 바라 본 아침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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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시간
밤이 되자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창을 열었더니 기분 좋은 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빗소리나 장작 타는 소리 영상이 asmr이라는 주제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리와 냄새와 풍경이 가져오는 감성은 절대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내도에서의 비 내리는 밤, 장작을 태운 시간은 잃어버린 내 안의 길(道)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에게는 소중한 선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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