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천평'을 만나다
[최미향 기자]
▲ 세아평미술관 김혜란 관장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민화 미술관 |
ⓒ 최미향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천평'이란 뜻을 가진 충남 서산의 세아평미술관. 이곳은 자연과 함께 힘든 이들에게 아름다운 휴식을 선물하는 입체적인 공간이다. 잠시 머리를 식혀야겠다고 생각할 때 발견한 언덕 위 하늘과 맞닿은 아름다운 미술관. 이런 곳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2월의 겨울바람은 다소 쌀쌀했다. 두리번거리다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인기척이 들렸고 서산시 음암면에 위치한 세아평미술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곳에는 민화로 유명한 김혜란 관장이 활짝 웃고 있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극도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다양한 감각으로 탄생한 대형 민화작품과 조형물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느라 내려오면서 볼 요량으로 우선 눈에만 가득 담고 2층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제4전시실과 제5전시실에는 동·서양의 느낌이 공존하는 독특한 창작 민화들이 반갑게 손짓을 했다. 이곳은 1층과는 또 다른 특별한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 세아평미술관 전경 언덕위에 있는 민화 미술관 |
ⓒ 최미향 |
- 들어오다 보니 미술관 외부가 상당히 넓어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실내에 들어와 보니 독특하고 이색적이라 더 놀랍다. 이 건물은 누가 지었나?
"아마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일 것이다. 이곳은 남편과 내가 둘이서 자그마치 3년 동안 지었다. 남편 퇴직 후 우리는 한동안 해외에 거주했고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주 갔던 곳은 작은 미술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일 일해도 버거운 넓은 땅을 말 타고 다니면서 관리하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 싶어 마음을 받아들여 구한 것이 약 1만9000㎡(5800여 평)로 넓디넓은 현재 세아평미술관 터였다.
▲ 김혜란 작 서산시 음암면 세아평미술관 |
ⓒ 최미향 |
- 현재 지곡면 화천리 안견기념관에 전시된 '몽유도원도'를 직접 그렸다. 당시 얘기를 듣고 싶다.
"어느 날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안견은 조선 초기의 화가로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긴 인물이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듣고 3일 만에 안견이 직접 그린 작품인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우리나라에 있지 않다.
나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가장 먼저 그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위해서였다. 일제 강점기에 수탈되어 현재 일본 나라현 탠리시의 천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 일본으로 세 번씩이나 날아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대학 도서관장과 개인적으로 막역한 사이라,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그림을 특별히 볼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원본을 볼 때마다 숨죽이며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드로잉을 해나갔다.
1년 동안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원본은 그림이 작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힘드니 3배 크기로 확대하여 병풍 8폭에 담았다. 안견을 고증하면서 그려 나간 지 장장 3년 만에 드디어 완성품을 서산시 안견미술관에 걸 수 있었는데 당시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겁다."
- 민화를 하다 보면 속상할 때도 있고, 반대로 보람 있을 때도 있을 것이다.
"민화는 '본그림'이 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본그림'을 보면서 그대로 복원하는, 이른바 복원미술가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마모되고 손상된 것들, 혹은 없어진 작품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복원시키는 작업이다. 상당히 의미 있는 일임에도 '본'을 드로잉해서 공작하니 여전히 공예 쪽에 민화를 넣어뒀다.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디 속상한 일뿐이겠는가. 보람 있는 것은 바로 민족성과 문화적 특성을 가식 없이 드러내는 민화를 배우고자,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와 주는 후학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화에 대한 애착심도 뛰어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도약하는 모습이 실로 놀라울 정도다. 제자들과 함께 자료를 연구하면서 평가하는 과정을 거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묘한 매력이 있는 우리의 미술 민화다.
▲ 세아평미술관 1층에 전시되어있는 작품 민화 김혜란 작가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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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라마다 전통미술이 있다. 우리나라는 민화다. 이제야 꽃피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일본의 전통미술 '우키요에'는 이미 60년 전에 각 대학의 정규교과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도 더 많은 정규대학에서 민화를 배울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 김혜란 작 세아평미술관 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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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역사적 전통을 더욱 계승·발전시켜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 높이겠다"는 그녀는 "민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심하게, 무엇보다 각자의 색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차가운 겨울이 건너가고 세아평미술관에 연둣빛 물이 차오르면 부디 그녀와 제자들이 함께 민화를 전시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전통민화가 대중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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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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