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공도 바꿨다" 탈원전이 앗아간 원자력 학도의 꿈
━
"세계 최고 기술 믿었는데…진로 변경해야"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한 뒤 원자력 발전이 아닌 방사선 분야로 바꿔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 박사과정 중인 A씨가 16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과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원자력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해 학과를 선택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란 암초를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부에서 원자력 분야를 공부하는 친구들도 해외로 가느냐, 4~10년간 공부한 걸 버리고 비원자력 분야로 바꾸느냐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
"북한 원전 건설은 폭탄을 안기는 것"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올해로 4년째를 맞으면서 KAIST 원자력 전공 학생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 대학 원자력 전공자가 탈원전 정책 이전보다 절반 이하로 감소한 가운데 이미 전공 선택한 학생들조차 진로 변경을 고민하는 상태다.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3학년 학생 B씨는 “정부의 성급하고 대안 없는 탈원전 정책으로 학생들이 혼란에 빠졌다”며 “원자력에 관심이 있어서 학과를 선택하긴 했지만 원자력 발전과 관련 없는 분야를 다시 배워야 하는 거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B씨는 “입학 당시에는 원자력 분야에 관심이 있다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은 친구가 꽤 있다”며 “정부가 탈원전 정책 대안으로 추진하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이른바 대체 에너지는 현재 상태에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될 수 없으며, 만약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건설한다면 관리 등에 문제가 발생할 게 뻔해 폭탄을 안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
전공자들 "비원자력 분야로 바꿀지 고민"
KAIST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인 녹색원자력학생연대 조재완(31) 대표는 “탈원전 정책 이전에는 학생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쌓아가느냐는 걱정을 했지 산업 자체가 흔들릴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력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원전을 새로 짓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탈원전을 하는 것”이라며 “전공 학생까지 대거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원전을 늘리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동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 선진국들도 대한민국 원전을 선호한다”며 ”우리 인재들이 유럽에 진출할 기회는 막고 오히려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보도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라고도 했다.
원자력을 전공하려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학부과정에서부터 진로를 바꾼 학생도 있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3학생 C씨는 “대한민국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 원자력에 매력을 느꼈지만, 원자력을 전공하면 미래가 불투명할 거 같아 단념했다”며 “다른 대학에 다니는 원자력 전공 친구들도 다른 분야를 복수 전공하는 등 전향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
"5명 이하면 강의 개설도 어려워"
신입생들 중 원자력 분야 전공을 희망하는 비중도 급감하는 추세다. KAIST에서 지난해 11월 전공을 선택한 봄학기 입학생 600여명 중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학생은 6명이었다. 문재인 정권 이전인 2010년부터 2016년까지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자 수가 한 해 평균 20명에 달했다는 점에서 전공을 회피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더구나 가을학기 입학생 중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선택자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0명을 기록했다. 2018년과 2019년의 경우 1년 총 입학생들 중 원자력 전공을 택한 학생은 각각 5명, 4명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KAIST 원자력 전공 학생들은 “학기당 수강생이 5명 미만이면 강좌 개설도 어렵다”며 “지원자가 적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할 거 같아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정용훈 교수는 “전공 선택은 국제 정세나 국내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원자력 학과 선택자가 급감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원자력 전공자가 급감하면 국내 기존 원전의 안전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원전 정책은 고등학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는 올해 신입생 정원(80명)을 채우지 못하고 신학기를 맞게 됐다. 추가모집까지 했지만 79명 모집에 그쳤다. 경북 울진에 있는 이 학교는 원자력 인재를 양성하는 국내 유일의 고등학교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文, 백운규 영장에 격노···그뒤 靑·尹 인사조율 무산"
- 102세 김형석의 자녀교육법 “아이에겐 딱 이것만 주면 된다"
- 5만달러 거제의 추락···"YS·文 배출한 우리 좀 살려주이소"
- 집값 10억 오르는데 세금 16억···'차원'이 다른 종부세 폭탄
- 진중권 "우린 불법사찰 DNA 없다? 靑의 해괴한 나르시시즘"
- '어대명' 별칭도 등장…이재명 1위 독주, 대세인가 고점인가
- [단독]"검찰 패야" 文과 외쳤던 김인회, 이젠 "경찰파쇼 걱정"
- [단독] 9년전 '노크 귀순' 그곳, 이번엔 '헤엄 귀순'에 뚫렸다
- “제2의 서태지? 과찬이자 부담···이승윤으로 남고 싶어요”
- 사흘치 쌓인 신문 눈여겨봤다…할머니 구한 英 신문배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