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백신 나오면 웃을 수 있겠죠" 명동 상인들, 코로나 절망 속 작은 기대
상인들 "백신 나오면 상황 바뀌지 않겠나", "코로나 끝이 있을 것"
매출 줄고 손님도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활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소영 인턴기자] "코로나 언젠가 끝나겠죠. 뭐 평생 가겠습니까? 백신도 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1년.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코로나 불황'을 겪으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 손님이 많았던 서울 중구 명동 거리는 전 세계적으로 해외여행이 중단되면서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최근 코로나19 백신 소식에 상황을 좀 반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15일 오후 찾은 명동 거리는 평일임을 고려해도 이곳을 찾은 손님을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운동화 등 신발을 판매하는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는 직원만 볼 수 있었고, 관광객을 상대로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거리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의 한숨도 여전했다. 명동에서 40년간 인형과 장난감을 판매해온 80대 여성 박 모씨는 "아침 10시에 나와 아직 하나도 못 팔았다"라고 토로했다.
박 씨는 "판매가 급격히 줄다 보니 올해는 물건을 따로 들이지도 않고 작년에 팔다 남은 물건을 판매 중"이라며 "얼른 (백신이) 나와서 어떻게 해결이 좀 되어야지, 죽겠어 정말"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코로나19 백신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또 다른 상인은 백신으로 인해 올해 명동 거리는 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동에서 30년간 신문, 복권 판매대를 운영해온 김 모(65)씨는 "(명동 매출)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뭐, 코로나가 언제까지 이어지겠냐"라면서도 "연초에는 로또나 복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손님도 이제는 없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손님 없어도 매일 정시 출·퇴근하고 있다"면서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잘 될 거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코로나 백신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이곳 상인들은 그 백신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백신이 나오고 상황이 좀 괜찮아지면 코로나 이전 상황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매출 등 상황이) 괜찮아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상인들의 한숨이 이어지는 가운데 매장에서 불이나 점포 운영 중단이라는 큰 시련을 맞은 상인들도 있다. 설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4일 오전 4시55분께 한 화장품 판매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은 3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
피해를 본 상점은 총 5개 매장이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 매장의 입구는 화재 잔해물로 뒤섞여 있었다. 벽돌, 콘크리트 등이 혼잡하게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었다. 건물 2층은 구멍이 나 텅 빈 내부가 보이기도 했다. 2층을 지지하던 철근 일부는 1층을 향해 길게 늘어뜨려 있었다.
이 중 한 곳에서는 본사 직원 5명이 현장에 나와 상점 내부 상황을 확인하는 등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상황을 확인하던 한 직원은 "코로나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 것 같다"라고 짧게 말했다.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곳을 지켜보던 60대 남성 3명은 "이 집들 다 타버렸네. 참나" "이거 장사 어떻게 하나"하며 혀를 찼다.
코로나19 사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점포에 불까지 나 망연자실하는 등 명동 상인들의 절망이 깊어지는 가운데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에 많은 매출을 기대는 명동의 경우 이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매출 하락이 컸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251만9118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85.6% 감소했다. 2020년 12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6만2344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5.7% 줄었다.
자취를 감춘 관광객은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신한카드,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서울연구원 등 8개 기관이 참여해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서울 상점 매출 감소폭은 9%(약 9조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명동, 이태원, 잠실롯데 등 주요 관광 상권의 매출액 평균은 전년 대비 71%에 머물렀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명동을 찾지 않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2020년 수송인원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총 수송인원은 총 19억7912만명으로 전년(27억2625만명) 대비 7억4712만명이 줄어들어 감소폭은 27.4%를 기록했다. 일평균으로 보면 지난 2019년 746만9180명이었던 것이 지난해 541만9368명으로 줄었다.
가장 큰 감소폭을 보인 노선은 1호선으로 수송인원 감소율이 33.1%였다. 그중에서도 전년 대비 수송인원 감소폭이 가장 큰 역은 4호선 명동역으로 58.4%가 감소했다.
공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재택근무 등을 시행하면서 대중교통 이용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물론 정치권 안팎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 복구 논의에 한창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매출이 줄어든 모든 소상공인에 4차 소상공인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의 질의·답변 과정에서 "소상공인 정의가 매출 10억원 이하를 의미하지만 사실 매출 4억원 이하가 대부분"이라면서 "아직 확정적으로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10억원까지 하려고(기준을 올리려고)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같은 당 정일영 의원의 질의에 홍 부총리는 "그동안 매출 4억원 이하를 대상으로 버팀목 자금을 지원했는데 (앞으로는 매출) 4억원을 넘더라도 고통받는 계층을 추가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3월 중순 이후 피해·취약계층에 대한 4차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손실보상과 재난지원금 외에 정부 제한 조치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게는 긴급생존자금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에 대해선 3개월 면제 조치와 전국 농어촌에는 일명 '고향살리기 긴급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69만 서울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2021년 소상공인 종합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16일 밝혔다.
서성만 서울시 노동민생정책관은 "자치구별 소상공인 전담 종합지원플랫폼에서 지역 특성과 소비 트랜드를 반영한 밀착형 지원을 펼쳐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길러주고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소상공인 스스로 자생력을 길러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소영 인턴기자 sozero8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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