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당신, 내가 뭔 말 하는지 알아?

2021. 2. 1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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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 횟수도 두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한다. 그렇게 애정 표현을 소홀하게 할 거면 '결혼을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애로 부부'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편이 이혼을 고민하며 내뱉은 말이다.

'남편이 남자로 보이는 것'과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리학 연구들은 아내의 말이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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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부부관계 횟수도 두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한다. 그렇게 애정 표현을 소홀하게 할 거면 ‘결혼을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애로 부부’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편이 이혼을 고민하며 내뱉은 말이다. 이 말에 아내는 “더는 남편이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에 남편은 “그게 무슨 말이냐? 섹시하지 않다는 의미냐? 아니면 나에게 존경심이 사라졌다는 말이냐?”라고 되묻는다. 실망한 표정으로 아내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게 진짜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매력도 떨어지고, 남편인지 친구인지 오빠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여기서 아내는 심각한 논리적 비약을 한다. ‘남편이 남자로 보이는 것’과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섹시함, 존경심, 혹은 사회적 능력과 지위라고 말했다면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리학 연구들은 아내의 말이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부부들은 결혼 시작부터 죽을 때까지 싸운다. 부부에게 싸우는 것은 정상적인 일상이다. 그렇다고 싸운 후에 문제가 해결되고 그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부부는 서로 바꿀 수 없는 똑같은 문제로 평생을 다툰다. 그럼에도 어떤 부부는 반복되는 싸움 후에 관계가 급속도로 안 좋아지고 어떤 부부들은 싸움 후에도 관계가 나빠지지 않고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한쪽이 그냥 포기한 것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싸운 후에 관계가 잘 유지될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많은 부부가 오랜 시간의 반복되는 싸움 후에 어쩔 수 없이 포기를 선택하며 안정을 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포기했다고 안정과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가슴 속에 불만과 상처를 억누르고 지낼 뿐이다. 미국 미시간대학 심리학과 애미 골든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이 비밀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에 있다.

부부싸움에는 불만을 제기하는 자와 방어하는 자가 있다. 싸움 후에 불만을 제기한 자가 ‘불만과 아픔이 배우자에 의해서 잘 이해되고 공감됐다’라고 생각되면 부부싸움은 물에 칼 베기가 된다. 아니, 골든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부부관계는 더욱더 견고해지고 좋아진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결과는 충격적이다. 하지만 배우자가 침묵과 방어 그리고 재공격으로 임한다면 관계는 끝도 없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부부싸움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나에게 불만이 있다는데 세상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게 그렇게 문젠가?’라는 생각에 배우자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할 말 안 할 말 다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인은 더하면서 나의 작은 실수와 단점에 목숨 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 나만큼만 하라고 해. 자기는 어떻고?’라는 생각에 오히려 울화통이 터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배우자가 당신에게 불만을 품고 힘들어한다면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만을 분석하고 해결점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우자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 수 있고, 혹 그렇다 할지라도 배우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당신을 바꾸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자의 불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고 배려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 옳고 그름을 떠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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