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가습기 살균제 판결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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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한 지난달 법원 판결은 '무엇이 과학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판결 요지는 두 회사가 제조, 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킨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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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한 지난달 법원 판결은 ‘무엇이 과학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법원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직 임원 등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 요지는 두 회사가 제조, 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킨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즉각 판결을 비판했다.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이규홍 박사는 입장문을 내고 “증언이 원래 발언 취지와는 다르게 인용되거나 (법원이) 여러 연구 결과를 선별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CMIT·MIT와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의 인과성 규명은 어느 하나의 실험 결과로 얻어온 것이 아니며, 이를 단정적으로 증언하지 못한다고 해서 (법적) 판단에서 배제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양측의 의견을 종합하면 CMIT·MIT 성분은 옥시가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 비해 폐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덜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더욱 확실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과학자들은 지금까지의 연구로도 유해성이 충분히 드러났다는 입장이다.
‘유해물질과 질병 사이 인과관계’하면 또 떠오르는 판결이 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케이티앤지(KT&G)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500억원대 민사소송에서 공단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여기서도 ‘인과관계 부족’을 주요 논거 중 하나로 들었다. 폐암을 유발하는 요인은 흡연 외에도 많고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 폐암에 걸린 사례도 있다고 했다. 법원은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더라도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판사의 인과관계는 과학자의 인과관계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은 흡연을 질병의 원인으로 보고 대중에게 금연을 권장했다. 경험적인 데이터가 있었으므로 이를 실험실에서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반면 법원은 누군가에게 벌을 주려면 확증적이면서 단정적인 인과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의문이 생긴다.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는 100% 단정적일 수 있는가. 과학자들은 늘 자신의 연구 결과가 반증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과학이 기존 학설을 반증하는 방법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고 반증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과학자 사회에서는 이를 더 과학적인 태도로 받아들인다. 법원이 자연현상이 아닌 사회현상에 관해 판결할 때도 100% 확실한 인과관계를 추구해 왔는지 궁금하다. 유죄 판결이 내려진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사건에서 ‘깨알 정답’ ‘정정 전 정답’과 부정행위 사이 인과관계는 반증 불가능한 것이었나.
법원이 과학과 인과관계에 대한 지금 태도를 유지하면 앞으로도 유해물질을 제품에 넣어 판매하는 기업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 존재라는 ‘경험’과 유해물질을 제품에 넣는 것은 나쁘다는 ‘상식’은 법정에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한국환경보건학회 등 6개 환경 및 의학 관련 학회 전문가 20여명이 오늘 가습기살균제 무죄 판결을 학술적으로 검토하는 심포지엄을 연다. 이 자리에서 ‘법원의 과학’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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