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섹스 앤 더 시티
‘섹스 앤 더 시티’가 돌아온다고 한다. 1998년 시작해 여섯 해를 내리 흥행에 성공했던 미국 드라마다. 뉴욕에 사는 여성 네 명의 사랑과 도시를 그린다. 30대였던 주인공이 이제 50대가 돼 여전히 싱글로 맨해튼을 누비는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드라마는 섹스보다는 도시, 정확히는 도시생활에 관한 얘기다. 이 드라마 덕에 뉴욕은 세계 젊은 여성들이 꿈꾸고 그리는 싱글라이프가 있는 로망의 공간으로 떠올랐다. 그전만 해도 뉴욕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다. 낙서로 얼룩진 불결한 거리와 대낮에도 강도가 들 정도로 위험하며 혼잡하기만 한 대도시의 대명사였다. 위험하고 야멸차며 비싸기만 한 익명의 전장 같은 공간이었다. 드라마는 빌딩숲 아래 이웃이 있고 거리가 살아 있는 도시의 전형으로 단숨에 뉴욕의 이미지를 바꿨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가던 레스토랑과 바를 순례하는 여행 코스가 생겼을 정도이니 이만한 광고도 없었을 듯하다.
드라마는 우리나라에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특정 구두 상표가 명품 반열에 오르는가 하면 비 오는 날에 목이 긴 고무장화를 신는 패션이 유행하기도 했다. 젊은 여성들이 휴일 오전에 모여 브런치를 먹는 문화도 생겼다. 우리 사회에서도 도시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니 드라마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대표적 예로 ‘차도남’ ‘차도녀’ 같은 유행어가 있다. ‘차가운 도시의 남자(여자)’라는 뜻은 분명 도시에 대한 최초의 긍정적 수식어였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뿐 아니라 도시라는 생활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부정적 시각을 해체하고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문화적 혜택과 사람의 관계를 조명한다. 드라마에서처럼 뉴요커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도시적 생활을 한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걷기’다. 드라마 주인공 넷은 전문직을 가지고 있어 경제적으로는 적어도 중상류층에 속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 비싼 유지비도 문제지만 걷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다.
걸어서 또는 대중교통으로 닿는 거리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 상점은 없지만 이웃에 밤새 문을 여는 식료품 가게가 있고 카페와 빵 가게가 있다. 센트럴파크 말고도 작은 공원이 가까이 있고 도서관에 걸어서 도달할 수 있다. 자동차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도시의 인도는 그들이 쇼핑한 옷과 구두를 자랑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대도시 뉴욕의 걷기 예찬은 주인공 캐리의 하이힐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환유(換喩)돼 내내 잔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차창 너머의 도시와는 어떤 소통도, 상호작용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드라마가 서울에 브런치 문화를 들여왔지만, 자동차 없는 도시 생활은 유행시키지 못한 듯해 아쉽다. 드라마의 핵심은 걷기야말로 도시적 라이프스타일의 기본적 조건이라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걸으며 생활할 때 이웃을 만들고 비로소 도시 공간의 진가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버리고 걷는 도시의 인간적 삶에 대한 드라마의 통찰은 전해지지 않았다.
물론 서울의 도시 구조 문제도 있다. 울퉁불퉁하고 비탈지며 좁은 보도가 걷기 어렵게 한다. 인도에 불쑥 올라와 주인 행세를 하는 자동차들도 있다. 건축과 사람의 관계가 밀접하지 않고 지루해서 걷기보다는 가까운 곳도 자동차를 타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모두가 지하주차장이 완비된 아파트에 살며 자동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은 도시의 모습이 아니다. 마지못해 살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떠나리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고행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도시가 아니다. 드라마는 도시는 즐기는 장소라고 선언한다.
‘섹스 앤 더 시티’ 속편은 팬데믹 시대의 도시를 어찌 그려낼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은 여전히 걷고 있을까?
이경훈(국민대 교수·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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