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우린 불법사찰 DNA 없다? 靑의 해괴한 나르시시즘"

2021. 2. 1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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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직권남용 혐의 인정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블랙리스트'란 말 없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청와대
증거인멸을 '증거보전',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네이밍
초현실을 현실로 바꿔 인지부조화 해소하려는 몸부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유명한 그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파이프 바로 아래로 문장이 하나 적혀 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도상은 파이프를 보여주나 문장은 이를 부정한다. 요즘 청와대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나? 며칠 전 초현실주의 시를 발표했다. 제목은 ‘이것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다.’

불법을 제독하는 완곡어법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당시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그것을 ‘체크 리스트’라고 불렀다. 이런 것을 완곡어법(euphemism)이라고 하는데, 이 정권 사람들은 이 수사법을 각별히 선호하는 듯하다. 증거인멸을 ‘증거보전’이라 부르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부르던 것을 생각해 보라.

완곡어법은 현실을 제독하는(detoxify) 기능을 한다. 나치는 고문을 ‘강력 심문’, 체포를 ‘자진 출두’, 살해를 ‘특별조치’라 불렀다. 이렇게 언어의 조작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유해한 것이 유해하다는 인식 자체를 지우고, 자기들 자신과 지지자들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조건 옳다는 맹목적 확신을 주입하는 것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 사태를 “전 정부 출신 산하기관장에게 사표를 제출받은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다투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대체 거기에 다투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는가. 음주운전 사건을 가리켜 ‘술 먹고 운전한 것이 음주운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다투는 사건’이라 하는 격이다.

판결문에는 “신분 또는 임기가 보장되는 산하기관 임원들에 대해 사표를 제출하게 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 적혀 있다. 자꾸 파이프가 파이프가 아니라고 우기니, 법원에서 아예 파이프는 파이프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이는 타파돼야 할 불법 관행이지 피고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유로 고려할 수 없다.”

낱말을 새로 정의하라

퍼스펙티브 2/17

윤리는 아예 문제도 안 된다. 그들의 관심은 불법이 아니게 낱말을 ‘정의’하는 데에 가 있다. 전직 청와대 대변인은 ‘블랙리스트’라는 말을 “지원을 배제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정부 조직을 동원해 치밀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좁게 정의했다. 그래 봤자 이 케이스는 그들이 정한 요건을 두루 충족한다.

장관의 지시로 쫓아낼 인사 30인의 명단을 만들었다. 청와대 비서관실 요청으로 대상자들의 약력·임기·보수와 세평을 기록한 문서를 작성했다. 심지어 ‘조치 계획 문건’까지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상자들에게 사퇴를 종용하고, 불응하는 이들에게는 감사를 이용해 사표를 내도록 협박을 가했다. 뭐가 더 필요한가?

그러자 현직 대변인이 슬쩍 요건을 하나 덧붙인다. “지원 배제 명단의 존재 여부,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감시나 사찰 여부.” 그래도 감시나 사찰은 없지 않았냐는 항변이다. 그럴까? 판결문에는 환경부에서 대상자들의 세평을 수집하고 특정인의 경우 야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는 동향까지 파악했다고 적혀 있다.

전·현직 대변인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낱말의 정의를 되도록 좁게 내렸지만, 이 사건은 그 까다로운 요건들을 두루 충족하고도 남는다. 특히 ‘김 모 감사의 경우 비위 조사 후 조치한다는 내용’은 블랙리스트가 감시나 사찰의 수준을 넘어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실행됐음을 보여준다.

블랙리스트는 이 정권의 인사정책

정의는 제 마음대로, 적용은 제 편할 대로다. 그들은 “세평을 수집한 사람들을 위협·위축시키거나, 제어할 만한 개인적인 비위 사항이나 약점·취약점들이 수집돼 정리되어야만 블랙리스트”(박주민 의원)라 했다. 그러더니 거기에 해당하지 않은 검찰의 세평 수집은 ‘사찰문건’으로 규정해 검찰총장 징계의 사유로 삼았다.

문재인 정권의 고유성은 ‘참을 수 없는 그 존재의 뻔뻔함’에 있다. 전 환경부 장관이 2년 6월의 형을 받고 구속됐는데 청와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을 보자. “우리 정부는 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 등의 임기를 존중했습니다.” 그럼 김 전 장관이 ‘공공기관장 등의 임기를 존중한 죄’로 구속됐단 말인가.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존중하는 게 이 정부의 인사정책 기조란다. 하지만 판결문은 “임원들이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고 못 박았다. 게다가 김 전 장관이 그 자리에 제 사람을 앉히려 그랬겠는가. 청와대에서 내려보낸 낙하산 부대를 앉히려 그런 거지. 다른 게 아니라 이게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 기조다.

재판부에서도 이를 “대통령 비서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로 판단했다. 위에서 시킨 일이라는 얘기다. 신미숙 인사비서관의 상관은 청와대 인사수석과 임종석 비서실장. 이게 어디 환경부만의 일이겠는가. 이 사건을 알린 김태우 특감반원은 당시 “330개 공공기관의 인사리스트가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들의 해괴한 나르시시즘

판결문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혐의를 부인하며 명백한 사실조차 다르게 진술하고 있다.” 그래서 재판 도중에 구속이 된 거다.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왔었다. “객관적 물증과 신빙성 있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한다).” 이렇게 팩트 자체를 부정하는 게 이 정권 사람들의 종적 특성.

언젠가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DNA에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후장상에 어디 씨가 따로 있던가.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 만드는 잡것들에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자기들은 씨가 다르다고 굳게 믿는다. 해괴한 나르시시즘이다.

자기들에게는 불법사찰의 DNA가 없단다. 그러니 자기들이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블랙리스트일 수가 없는 것이다. 궤변이 예술(?)이다. 판결문에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없으니 블랙리스트가 아니란다. 판결문에 ‘퍽치기’라는 말이 없으니 ‘둔기로 두부를 가격해 금품을 탈취’했을 뿐 퍽치기는 안 했다는 논리다.

뭐라고 네이밍을 하든 그들이 추잡한 짓을 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철학이 다르니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결국 게걸스럽게 자기 패거리들 밥그릇이나 챙겨주려고 벌인 일. 법원은 그 짓의 위법성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런 식의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이전 정부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적폐 청산’을 외치는 그자들이 실은 더 썩었다는 얘기. 하지만 이 나라에서 만물의 척도는 민주당이다. 같은 관행도 남이 하면 ‘적폐’, 자기들이 하면 ‘적법’이다. “산하기관 임원에 대한 평가와 관리 감독을 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는 적법한 인사와 관련된 감독권 행사입니다.”(홍영표 원내대표)

블랙리스트는 블랙리스트다

자신들이 새로운 ‘적폐’라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화가 안 되니 슬쩍 물타기로 넘어간다. 국정원을 통해서 이미 묵은지가 되어버린 MB(이명박) 정권 시절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물고 늘어질 태세다. 아마도 ‘환경부 문건이 아니라 이런 게 진짜 블랙리스트’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국내 정치에 국정원을 끌어들이는 것을 ‘적폐’라 비난하더니, 그것도 자기들이 하면 적폐가 아닌가 보다. 공당에서 하는 짓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MB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용서되는가. ‘두 개의 잘못이 하나의 옳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이를 초등학교에서 배운다고 들었다.

자기들은 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블랙리스트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이번만이 아니다. 박원순도 어디 ‘그런 사람’이었던가. 그들이 블랙리스트를 블랙리스트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인정할 경우 그들과 지지자들의 상상계, 즉 자기들이 나라를 구하는 세력이라는 허위의식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 징그러운 나르시시즘이 사람을 질리게 한다. 블랙리스트가 블랙리스트가 아닌 초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법원을 장악하려 신판 사법농단까지 부린 것은 그 초현실을 아예 현실로 바꾸어 인지부조화를 실천적으로 해소하려는 몸부림이리라.

파이프가 파이프가 아니라는 그림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 하지만 그 그림 안으로 들어가 파이프가 파이프가 아니라 우기는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나라가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변했다. 그런 곳에서는 무의미한 동어반복이 외려 가장 의미있는 진리가 된다. ‘블랙리스트는 블랙리스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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