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칼럼] 청와대와 민주당은 '돈나무 언니'를 알고 있을까
내부 전문가 입도 틀어막는 여당
규제 완화하고 투명성은 높여야
돈과 인재는 자유를 찾아 흐른다
정치가 경제를 뒤덮고 있다. 엊그제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발표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국 유니콘(가치가 1조원 이상인 벤처)의 쾌거”라고 자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2 벤처 붐’에 어울리는 정치적 포장일지 몰라도 경제논리를 따지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쿠팡은 한국에서 돈을 버는 기업이다. 예상 시가총액도 현대차와 맞먹는다. 기획재정부로선 쿠팡을 서울 증시에 상장시키고 거래세와 주식 양도세를 걷는 게 국익에 맞는다. 쿠팡이 고민끝에 뉴욕 증시로 방향을 튼 것은 차등의결권 때문이다. 경영권을 지키면서 수백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바꿔 말하면 서울보다 훨씬 매력적인 뉴욕 증시로 탈출을 결심한 것이다.
중국 정부도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로 옮겨가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보았다. 그 후 차등의결권까지 과감히 도입해 알리바바를 5년 만에 홍콩증시에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주주 평등주의까지 허물며 지분율 6%의 마윈이 절반 이상의 이사를 지명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한때 서울 증시도 홍콩처럼 국제 금융허브를 꿈꾸었다. 그렇다면 홍 부총리는 “쿠팡의 탈출이 아쉽고 애석하다”고 땅을 쳤어야 했다. “제2, 제3의 쿠팡이 상장되도록 서울 증시를 탈바꿈시키겠다”고 다짐 했어야 옳다. 우리 정부가 중국 공산당보다 자본주의와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지난 연말 주식 양도세 과세 연기와 최근의 공매도 금지 연장 조치도 정치가 경제를 압도한 사례다.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개미투자자들의 표 계산 때문이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요즘 유행하는 ‘돈나무 언니’ 신드롬을 알았다면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주식 하면 워런 버핏’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요즘 대세는 미국의 아크 인베스트를 이끄는 캐서린 우드(65세)다. 국내의 2030 서학 개미들도 그녀를 ‘돈(캐시)+나무(우드) 언니’라 부르며 우상으로 떠받든다. 그녀를 따라 하면 주가가 놀랍게 치솟는 마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2017년 돈나무 언니는 TV 방송에 나와 60달러였던 테슬라 주가가 “향후 5년 안에 40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 장담했다. 사방에서 비웃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테슬라 주가가 15배나 치솟아 900달러에 이르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단박에 미다스의 손 반열에 올랐다. 돈나무 언니가 콕 집어준 바이오 종목들의 수익률도 놀랍다. 딱 1년 만에 퍼시픽 바이오 주가는 20배, 인바이테는 7배,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5배 넘게 올랐다.
돈나무 언니 열풍 배경에는 놀라운 수익률과 함께 또 하나의 숨겨진 이유가 있다. 바로 투명성이다. 월가의 대형 투자업체들은 비밀주의가 원칙이다. 돈이 될만한 종목을 발굴하면 은밀하게 큰손 단골들에게 먼저 알린다. 반면 돈나무 언니는 친절하다. 모든 내용을 차별 없이 SNS에 공개해 버린다. 해마다 연초에 발표하는 ‘빅 아이디어’라는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올해도 우주·유전자·전기차·딥 러닝·자율주행·비트코인 등 15개 분야를 콕 집어 투자 이유까지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러니 신도들의 뭉칫돈이 돈나무 언니의 펀드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용진 의원은 “공매도는 외국인·기관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짜 기울어진 운동장은 뉴욕 증시다. 게임스탑 사태에서 보듯 뉴욕 증시에는 공매도가 완전히 허용돼 있고 주식 수익에 대해 22%의 양도세를 칼 같이 뗀다. 여기에다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시차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하는 불리한 환경이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도 서학 개미들은 돈나무 언니를 따라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자유롭고 투명하다는 이유를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민주당이다. 국내 최고의 증시 전문가들이 민주당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사장 출신의 홍성국 의원은 30년간 증권시장의 간판스타였다. 이용우 의원도 동원증권·한국투자증권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들은 줄곧 “공매도는 재개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공매도 반대가 60%에 이르고 “동학 개미는 애국자”라는 정치적 구호까지 튀어나오자 민주당은 이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왜 전문가들에게 공천장을 쥐여주며 영입했는지 기막힐 따름이다.
알리안츠·푸르덴셜·바클레이즈·UBS·맥커리 은행…. 한때 우리에게 익숙했던 외국계 은행과 보험회사들이 서울을 떠나갔다. 워낙 규제가 많은 데다 저금리·저성장으로 먹을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쿠팡까지 태평양을 건너갔다. 이제라도 청와대와 민주당은 캐서린 우드의 열풍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았으면 한다. 홍콩 증시처럼 낡은 규제는 걷어내고 돈나무 언니같이 시장의 투명성은 높여야 한다. 집권 여당이 진짜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틀어막는 일도 사라졌으면 한다. 경제는 정치인이 잠 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인류 역사상 돈과 인재는 자유를 찾아 흘러가는 게 불변의 진리였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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