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출산하면 돈 준다는 지자체들

양성희 2021. 2. 1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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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도 없고 청년층 반감만
초저출산 시대 해법은 성평등
비혼 청년 중심 인구정책도 필요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딸아이가 처음 생리를 한 날을 기억한다. 전화 속 긴장한 아이를 달래다 울컥했다. 아, 어쩔 수 없구나, 이젠 너도 여자가 됐구나, 눈앞에 아이가 걸어갈 ‘여자의 일생’이 무슨 유행가 가사처럼 펼쳐졌다. 어른이 됐으니 축하할 일인데, 왜 그랬을까. 소설가 김애란을 빌려오면, 소설 ‘비행운’의 그 유명한 문장대로 “기껏해야 너는 자라서 내가 되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딸은 딱 요즘 20대로 자랐다. 비혼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결혼 아닌 일을 중심으로 제 삶을 설계한다. 취업난, 독박육아, 경력단절에 부동산·교육비까지 출산·육아의 짐이 너무 무겁다. 연일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을 두고서는 “태어난 아이 생명도 못 지키면서 무슨 아이를 더 낳으란 말이냐” 힐난한다.

딸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위험한 나라다. 언제 어디서든 불법촬영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n번방의 공포가 상존한다. 시장님의 음란 문자를 받고 속옷 수발을 들어야 했던 여비서는 성추행 피해를 알렸지만, 유력자들이 가세한 집단 가해의 희생자가 됐다.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추행을 인정해도 소용없었다. 서울시장 성폭력 때문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박원순이 우상호”라며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는 유족의 글을 인용했다. 피해자는 안중에 없는 눈물겨운 동지애다. 밀레니얼 세대답게 기후변화에 민감한 딸은 “지구를 위해서는 인구가 주는 게 낫다”고도 생각한다. 저출산이 국가의 존망을 해치고, 청년세대에 부담을 지운다는 말이 잘 안 먹힌다. “지구가 위기인데 나라가 무슨 소용이냐”는 항변이다. 200조원가량 퍼부었다는 저출산 대책이 백약무효인 이유다.

지난해 드디어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는 데드 크로스(dead-cross)가 발생하며, 인구 감소가 현실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지자체 단위의 출산장려금이 유행이다. 경남 창원시는 ‘결혼하면 1억원 대출, 애 낳으면 탕감’해 주는 ‘창원드림론’을 내놓았다. 나경원 서울시장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통 크게 1억1700만원의 보조금을 내걸었다.

‘돈 없다면 돈을 줄 테니 아이를 낳아라.’ 얼핏 문제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국민은 결혼·출산으로 국가 존속에 기여해야 하며, 미래 태어날 아이는 오직 노동력과 소비력으로 규정하는 도구적 관점이 있다. 내 몸의 통제권은 국가에 있으니 국가가 적게 낳으라면 적게 낳고, 많이 낳으라면 많이 낳고, 낙태하지 말라면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국민이 나라를 위해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 국민은 결혼과 출산 없이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박상현 IT 평론가)는 시대다. 무엇보다 “출생아를 잠재적 노동력으로 간주하고 시장 유지의 조바심에서 나온 정책이 과연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지”(김석호 서울대 교수) 의문이다.

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 총재의 말대로 “저출산 해결의 돌파구는 여성들이 임신·출산의 자기결정권을 누릴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30 여성이 불행한 나라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저출산 대책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늦더라도 성 평등한 나라,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답이다. 기혼자에서 비혼 청년 중심으로 초점을 바꿀 필요도 있다. 김석호 교수는 “미혼 청년들이 비혼을 결심한 이유에서부터 인구 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 대신에 청년 정책으로 인구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덧붙이자면 대한민국은 20대 여성 자살률이 급증하는 나라다. 2019년 20대 여성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 늘었다. 2020년 1∼8월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 시도자의 32.1%로, 세대· 성별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정부도 지난해 처음 2030 여성을 ‘자살 위험군’에 포함시켰다. 위험 사인이 또 켜졌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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