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의 한반도평화워치] 한국, 주한미군 배치 재검토에 협의할 준비 됐나
중국 억제 위해 일부 지상군의 동남아·호주 이전 추진 가능
미국 협의 요청 때 현 수준 주한미군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
청와대·외교부·국방부 간 긴밀한 사전 조율이 절실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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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주한미군의 운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보름만인 지난 4일 국방부에 해외 주둔 미군 배치 태세를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이튿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주둔 위치와 규모·전략·임무 등의 관점에서 올해 중반까지 ‘글로벌 배치 태세 검토’(Global Posture Review·GPR)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GPR을 통해 서유럽 주둔 미군을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가능성이 높은 중동과 (중동과 가까운) 동남부 유럽 지역으로 재배치해 급변 사태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을 연상시킨다. 미국이 2021년 전략 환경을 9·11테러 직후의 상황에 버금가는 중대한 국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부시 행정부가 2004년 8월 GPR 결과를 발표했을 때 핵심 키워드는 반테러(counter-terror)였다. 올해 GPR의 핵심 키워드는 반중국(counter-China)이 될 것이다. 보다 큰 틀에서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불리는 중국·러시아·이란을 다룰 전략적 관점에서 미군의 위치와 규모를 재조정할 것이다.
일대일로 vs 인도·태평양 전략
군사력은 외교 효과를 높이기도 하지만, 외교가 실패했을 경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러시아·이란의 전략적 공조를 막는데 외교력을 집중할 전망이나,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해 군사적 억제와 방어책을 마련할 것이다.
결국 초점은 중국이다. 중국판 유라시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일대일로 전략(BRI)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IPS)으로 제어할 수 있는 미군 재배치가 이번 검토 작업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BRI 대상 지역이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서아시아·중동·동남부 유럽에까지 이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 서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막고, 중간 지점인 중동에서는 걸프 지역 및 역내 주둔 미군과 우방국 간 연대로 제어하며, 동쪽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과 동맹국 및 우방국의 기여를 접목해 대처해야 할 상황이다. 결국 BRI와 IPS가 직접 부딪치는 최전선은 동남아의 육지와 바다이다. 미국으로선 남중국해 제해권 유지와 나아가 서태평양 지역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패권적 지위를 중국이 넘보지 않도록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미얀마 군사 쿠데타는 BRI와 IPS가 직접 충돌한 사례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적 가치를 외교의 핵심 요소로 들고나오자 미얀마 군부가 위기를 느꼈고, 동병상련인 중국의 보호막을 기대하고 아웅산 수치 정권을 무너뜨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으로선 중국이 미얀마를 인도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미 미국은 오바마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까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기존 공해전(air-sea battle)으로부터 육·해·공군을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MDO)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러한 군사 독트린을 계승·발전시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남아와 그 주변 지역에 미 지상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해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에 대응하기 위한 지상 발사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역내에 배치하기로 했으니 바이든 행정부는 후보 국가를 물색하고 미사일 부대를 운영할 지상군을 배치해야 할 상황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동남아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은 주한미군의 위치·규모·전략·임무에 영향을 미친다. 주한미군에 대한 배치 태세 검토는 북한 위협 억제가 일차적 기준이 되겠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개 과정을 볼 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의 연관성을 살필 수밖에 없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해외 주둔 미군 배치 태세 검토 과정에서 동맹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미국과의 협의에 제대로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문 정부,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매달려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비 태세를 한·미 동맹 중심으로 강화하기보다 북한과의 정상회담 이벤트 창출에 골몰하고, 한·미 연합훈련 재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 북핵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임기 내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을 고집하고, 남북 군사 합의나 대북전단금지법을 한·미 상호방위조약보다 우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국방부는 2만8500명의 주한미군과 막강한 전략 자산이 과잉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트럼프 행정부는 3만4500명이 주둔한 주독 미군 중 9500명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GPR이 끝날 때까지 주독 미군 감축을 보류했다고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시각은 전략적으로 안이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가 약한데 미국이 많은 예산을 들여 대규모 주한미군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 이번 기회에 일부 지상군을 동남아나 호주로 옮기는 것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GPR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미국의 GPR 협의 요청 시 한·미 동맹이 중요하고 현 수준의 주한미군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청와대·외교부·국방부 간 긴밀한 사전 조율이 절실한 시점이다.
■ 미군 세계 전략의 초점은 중국 팽창 억제
「 1990년 냉전 종식 직후 미국은 해외 군사 주둔을 계속할지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결론은 소련이라는 범세계적 위협은 사라졌으나 지역 차원의 불안정은 지속하기 때문에 미군의 전진 배치 전략을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10년 후 허를 찔렸다. 2001년 미 본토가 테러 공격을 받는 9·11 사태가 터졌다.
이를 계기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해외 주둔 미군 배치 태세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2004년 글로벌 배치 태세 검토(GPR) 결과를 발표했다. 테러와 무장 반란 등으로 대표되는 비대칭 위협과 대량살상무기 확산으로 인한 재앙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해외 주둔 미군을 신속한 원정작전(expeditionary operation)이 가능한 형태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데는 이라크전쟁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유럽의 동맹과 우방국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큰 애를 먹었다. 프랑스나 독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자체에 반대했고, 이탈리아는 자국 내 기지와 시설 사용을 거부했으며, 터키도 미국이 자국을 이라크 공격 교두보로 삼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부시 행정부는 2004년 GPR을 통해 주독 미군에서 2개 사단을 빼내 기동성 있는 스트라이커(Stryker) 여단으로 대체했다. 한국에서도 미 육군 병력을 오산 공군기지 옆 평택으로 옮겨 역외 긴급사태 시 신속 투입을 위한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했다. 일본 오키나와의 미 해병을 괌으로 옮겨 해군과 해병 작전을 통합했다. 중동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서유럽 주둔 미군을 동남부 유럽으로 분산 배치했다. 특히 불가리아·루마니아와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이들 국가 내 군사 시설에 미군 순환 근무 체계를 확립했다.
그런데 2021년 미국의 전략 환경은 또 달라졌다. 중국이 유라시아의 육지와 바다를 위협하고 있다. 냉전 시기 소련 봉쇄 조치와 같은 심층 방어 전략을 다시 채택할 필요가 있게 됐다. 2021년 GPR은 중국 팽창을 억제하기 위한 방향으로 해외 주둔 미군 배치를 조정할 전망이다.
」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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