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해외 매각 퇴짜놓은 국산콩 '종자 박사' 진심 통했다
7000종자 모은 정규화 전남대 교수
국내 다수 기업서 연구 지원 제안
"걱정 없이 후학 양성 전념할 수 있어"
“이제 후세대 연구자들도 큰 걱정 없이 우리 콩 연구에 뛰어들 길이 생긴 거죠.”
30여년 간 한국 야생·토종 콩을 연구해온 정규화(68) 전남대학교 교수가 지난 1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아직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국내 굴지의 콩 관련 대기업과 또 다른 지역기반 기업에서 야생·토종 콩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사비를 들여 7000여 점이 넘는 종자를 보관해오면서도 습도 조절조차 어려워 언제 콩 종자가 죽을까 걱정하던 상황에선 단비 같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그동안 외딴 섬, 깊은 산 곳곳을 떠돌며 7000여 점의 야생·토종 콩 종자를 모았다. 제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해 준 경남 진주시의 3600㎡(1100평) 규모 밭에서 매년 300여 개의 콩 종자를 심은 뒤 거둬들이고 사비를 들여 수집한 콩 종자를 보존해왔다.
정 교수는 2012년에 세계 굴지의 종자 관련 다국적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제안을 받을 정도로 해외에서 연구성과를 인정받아왔다. 그가 가진 아시아·한국의 콩 종자를 넘기면 해당 종자에서 나온 전 세계 매출액의 1%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정 교수는 “40억원 정도 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나는 장사꾼이 아닌 연구자이기 때문에 거절했다”며 “한국인이 많이 먹는 청양고추가 외국계 회사 소유 품종이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콩은 ‘주곡’(主穀)이기 때문에 더더욱 자본의 논리로 넘길 순 없었다”고 했다.
연구비 지원도 해외 쪽 비중이 크다. 정 교수는 공동연구 조건으로 홍콩 중문대학으로부터 연구비 6000만원, 한국 야생·토종 콩을 증식하는 조건으로 농촌진흥청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아 매년 콩밭을 일군다. 정 교수는 “홍콩과 함께 한국 콩을 연구하는 과제 비중이 3분의 2 이상이어서 미래에 일군 종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며 “그러던 중에 지난해 11월 중앙일보 등을 통해 연구가 알려진 뒤 국내 기업들로부터 지원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한국 토종·야생 콩 종자 연구에 가장 확충이 시급한 시설 중 하나는 콩 종자 보관시설이다. 정 교수가 사비를 들여 전남대 여수캠퍼스에 마련한 콩 종자 보관시설이 지난해 여름 온도·습도 유지장치가 고장 나 40도까지 온도가 치솟았다. 콩 종자 보관 적정 온도는 영상 약 4도, 습도는 30%다.
최근에는 경남 진주에 마련한 콩 종자 보관시설 습도가 50%까지 올라 애를 먹기도 했다. 정 교수는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면 보관 종자 중 30%는 죽는다고 봐야 한다”며 “종자 상태로 보존할 수 있는 기간도 약 5년인데 예산 한계 때문에 매년 300개밖에 심지 못하던 상황”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그가 온도·습도 걱정 없이 보관할 수 있는 시설에 더해 매년 1000~1500개의 콩 종자를 심고 거둘 수 있는 부지를 제안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제안해 온 기업 중 일부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할 정도”라며 “지금 기반만 잘 닦아두면 후세대 연구자들이 야생·토종 콩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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